brunch

외면했던 과거의 사건, 이제야 마주했습니다

도가니 사건, 수어로 다시 듣는 판결문

by 금머릿

“피고인을 징역 12년형에 처한다!”

검찰은 7년을 구형했지만, 재판관이 오히려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관이 입으로 이 판결문을 낭독할 때, 수어 통역사는 수어로 이 말들을 표현했다. 재판관의 입이 아닌, 통역사의 손짓을 보고 있는 이들. 나는 그들을 ‘꼬꼬무’라는 시사 프로그램(지난 2월 13일 방영분)과 ‘도가니’라는 영화에서 비로소 만났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청각장애 아동 성폭행 사건(2000~2005)이 세상에 드러났을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공지영 작가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2008년에 ‘도가니’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 공유가 주연을 맡아 출연한 동명의 영화가 2011년 9월에 개봉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책도, 영화도 몰랐다. 두 아들이 어릴 때였고, 사건에 대한 면역력이 바닥이었던 때였다. 뉴스조차 보지 못할 만큼 심적으로 연약했던 시기였다.


오며 가며 어깨너머로 들은 당시 사건의 이야기 조각은 서둘러 귀를 닫게 할 만큼, 두렵고 끔찍했다. 나는 듣기를 거부했다. 너무 무서웠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을 보호할 어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천대를 당해야 했던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손짓으로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는데도 나는 귀를 열지 않았다. 나를 지켜야 했고, 내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힘이 있었다. 돈이 있었다. 권력이 있었다. 장애아들을 잘 돌보고 가르치라고 나라에서 준 막대한 지원금으로 그들은 자신의 배를 불렸고, 자신의 돈을 불렸고, 자신의 권력을 지켰다. 첫 판결에서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사회의 지탄이 거셌지만, 그들의 견고한 카르텔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솜방망이 판결에 말을 할 수 없는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한 인턴 기자가 그에 관한 기사 한 줄을 신문에 남겼다. 그 한 줄의 기사를 공지영 작가가 보았다. 공지영 작가는 광주로 가서 사건의 진상을 듣고, 소설로 집필했다.


그 소설을 배우 공유가 보았다. 공유는 소속사 대표에게 말했다. “이거,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속사 대표는 그 말에 고민했지만 이내 동의했고,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뜻 나서는 감독이 없었다. 한참 만에 결심한 황동혁 감독은 어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인간 본연의 당위만을 가지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공유는 장애아들을 돕는 의로운 교사로 출연했다.


그리고 없을 줄 알았던 유일한 목격자가 나타났다. 피해 현장을 보았지만, 폭행으로 입막음 당한 그가 영화를 보고 증언하기로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 증언 덕분에 경찰은 사건을 재수사 하기로 결심했고, 당시 피해자들을 도왔던 변호사의 도움으로 일사부재리에 포함되지 않는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이 13단계의 연결고리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기사 한 줄, 책 한 권, 배우 한 명, 감독 한 사람의 용기가 모여, 참 많은 옳은 일을 끌어냈고, 고통당한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12년도 짧게 느껴지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학교는 폐교되었고, 운영 재단은 해체되었으며, 가해자 중 처벌이 약했던 자들은 다른 곳에서 팔이 잘리고, 암에 걸리는 등 불행을 겪었다.

이 사건 때문에 도가니법이 제정되었는데, 성범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었고 장애인 아동 보호 관련 법률이 개정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당시 고통을 당해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마지막 꼬꼬무의 세 진행자가 판결문을 수어로 재연하는 장면에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피고인을 징역 12년형에 처한다’라는 말은 나에게 말한다. 외면하지 말라고. 누군가의 고통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그 고통이 나의 것이 아니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힘을 합쳐 사는 피해자들을 응원한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보호할 보호자가 마땅치 않다고 해서, 누군가의 노리갯감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안전한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면, 작게라도 나의 목소리로 힘을 보태리라 다짐해 본다.


내 자녀가 살아가야 할 사회는 그렇게 조금 더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에 반응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더욱 관심을 쏟고 기도해주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꼬꼬무에서 만난 수어 통역사의 손짓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라고 말하고 싶은 '낮은 식탁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