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 수어로 다시 듣는 판결문
“피고인을 징역 12년형에 처한다!”
검찰은 7년을 구형했지만, 재판관이 오히려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관이 입으로 이 판결문을 낭독할 때, 수어 통역사는 수어로 이 말들을 표현했다. 재판관의 입이 아닌, 통역사의 손짓을 보고 있는 이들. 나는 그들을 ‘꼬꼬무’라는 시사 프로그램(지난 2월 13일 방영분)과 ‘도가니’라는 영화에서 비로소 만났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청각장애 아동 성폭행 사건(2000~2005)이 세상에 드러났을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공지영 작가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2008년에 ‘도가니’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 공유가 주연을 맡아 출연한 동명의 영화가 2011년 9월에 개봉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책도, 영화도 몰랐다. 두 아들이 어릴 때였고, 사건에 대한 면역력이 바닥이었던 때였다. 뉴스조차 보지 못할 만큼 심적으로 연약했던 시기였다.
오며 가며 어깨너머로 들은 당시 사건의 이야기 조각은 서둘러 귀를 닫게 할 만큼, 두렵고 끔찍했다. 나는 듣기를 거부했다. 너무 무서웠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을 보호할 어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천대를 당해야 했던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손짓으로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는데도 나는 귀를 열지 않았다. 나를 지켜야 했고, 내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힘이 있었다. 돈이 있었다. 권력이 있었다. 장애아들을 잘 돌보고 가르치라고 나라에서 준 막대한 지원금으로 그들은 자신의 배를 불렸고, 자신의 돈을 불렸고, 자신의 권력을 지켰다. 첫 판결에서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사회의 지탄이 거셌지만, 그들의 견고한 카르텔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솜방망이 판결에 말을 할 수 없는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한 인턴 기자가 그에 관한 기사 한 줄을 신문에 남겼다. 그 한 줄의 기사를 공지영 작가가 보았다. 공지영 작가는 광주로 가서 사건의 진상을 듣고, 소설로 집필했다.
그 소설을 배우 공유가 보았다. 공유는 소속사 대표에게 말했다. “이거,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속사 대표는 그 말에 고민했지만 이내 동의했고,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뜻 나서는 감독이 없었다. 한참 만에 결심한 황동혁 감독은 어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인간 본연의 당위만을 가지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공유는 장애아들을 돕는 의로운 교사로 출연했다.
그리고 없을 줄 알았던 유일한 목격자가 나타났다. 피해 현장을 보았지만, 폭행으로 입막음 당한 그가 영화를 보고 증언하기로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 증언 덕분에 경찰은 사건을 재수사 하기로 결심했고, 당시 피해자들을 도왔던 변호사의 도움으로 일사부재리에 포함되지 않는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이 13단계의 연결고리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기사 한 줄, 책 한 권, 배우 한 명, 감독 한 사람의 용기가 모여, 참 많은 옳은 일을 끌어냈고, 고통당한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12년도 짧게 느껴지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학교는 폐교되었고, 운영 재단은 해체되었으며, 가해자 중 처벌이 약했던 자들은 다른 곳에서 팔이 잘리고, 암에 걸리는 등 불행을 겪었다.
이 사건 때문에 도가니법이 제정되었는데, 성범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었고 장애인 아동 보호 관련 법률이 개정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당시 고통을 당해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마지막 꼬꼬무의 세 진행자가 판결문을 수어로 재연하는 장면에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피고인을 징역 12년형에 처한다’라는 말은 나에게 말한다. 외면하지 말라고. 누군가의 고통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그 고통이 나의 것이 아니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힘을 합쳐 사는 피해자들을 응원한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보호할 보호자가 마땅치 않다고 해서, 누군가의 노리갯감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안전한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면, 작게라도 나의 목소리로 힘을 보태리라 다짐해 본다.
내 자녀가 살아가야 할 사회는 그렇게 조금 더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에 반응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더욱 관심을 쏟고 기도해주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꼬꼬무에서 만난 수어 통역사의 손짓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