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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말하고 싶은 '낮은 식탁 의자'

낮은 식탁 의자에서 나를 보게 됩니다

by 금머릿

약 1년 전, 식탁과 의자가 우리 집에 새로 들어왔다. 이전에 쓰던 불편한 그 의자가 원목이어서, 그냥 참고 수년간 사용해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감사하게도 원목 식탁의 다리가 부러졌다. 딸아이가 짜증을 내며 짚고 일어서는 순간, 우지끈! 무식하게 튼튼할 줄만 알았던 그 다리가 나사를 뚫고 갈가리 찢기듯 부러진 것이다.


‘내가 옳다, 나만 옳다’를 수없이 어필하던 내가 부러졌다. 마치 천년만년 부러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던 내 ‘의’가 산산이 조각났다. 참 우습다. 내가 튼튼해서 모두를 떠받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사 몇 개에 의지한 거였고, 그 나사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허무하게 무너질 뿐이었다.


버리는 데에 돈과 수고가 따랐다. 부러진 게 미워서 어서 버리고 싶어도, 무거워 혼자 버릴 수도 없었다. 남편이 시간 날 때, 현금이 마련되었을 때. 우리는 낑낑대며 6년간 함께해 왔던 식탁을 버렸다.


나의 미운 모습을 깨우쳐도, 단번에 버려지지 않는다. 집 안 구석에 애물단지처럼 놓여있던 식탁처럼 한동안 직시해야 하고, 시간과 수고와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식탁은 버리고 나면 그만이지만, 나의 못난 모습은 왜 이리 부스러기가 많이 남는 건지.


새로 들여온 식탁은 기존 식탁보다 10cm가량 낮다. 식탁의 높이에 맞춰 의자 역시 낮다. 그래서 두 발이 편안하게 바닥에 닿는다. 그뿐 아니라 엉덩이를 대고 앉는 부위도 상당히 넓다. 태평양 같은 나의 골반을 다 감싸 안고도 양옆으로 여유를 부린다.


인조가죽임에도 불구하고 꽤 폭신하다. 솜이 들어앉은 듯하다. 등받이 또한 넓고 폭신해서 등을 대고 앉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도 다리와 등이 편안하다.


나의 의를 내려놓고, 옆 사람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키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둥근 엉덩이든, 뾰족 엉덩이든, 그저 지탱해주며 편안함을 선사하는 것. 나의 낮 시간의 대부분을 감당해 주는 이 낮은 의자처럼, 계속 함께 있고 싶고, 기대어 좀 쉬어가게 만드는 그런 사람. 그냥 나를 10cm만 낮추면 되는 거다.

나를 편안하게 감싸 안는 의자가 완벽하게 나의 엉덩이를 책임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의자 발에 달린 천 조각에 먼지가 쌓이자, 의자를 움직일 때마다 끄는 소리가 요란했다. 때마다 먼지를 털어주어야 했다. 나 역시 마음에 먼지가 쌓이면 고함이 높아졌다. 털어야 한다. 의자보다 좀 더 자주 털어야 한다.

급하게 일어나다가 의자를 뒤로 밀었더니, 등받이의 뒤가 날카로운 몰딩 모서리에 콱 부딪혔다. 놀라서 바라보니, 인조가죽 몇 점이 떨어져 나갔다. ‘아, 안 돼...ㅠㅠ’ 하지만 그럴 때도 있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평온하다고 자부하는 순간에도 그렇게 갑자기 생채기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의자가 흔들거리는 느낌이어서 영 마음이 불편했다. 알고 보니, 나사가 헐거워졌다.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나 싶었지만, 괜찮았다. 드라이버로 살짝 돌려만 줬더니, 처음처럼 단단해졌으니 말이다. 헐거워지는 나의 선한 마음도 조여 주면 되는 거였다. 그러려면 유용한 드라이버 하나쯤은 장만하긴 해야 하나 보다.


식탁에 다섯 식구가 둘러앉은 주말의 저녁 시간은 무얼 먹지 않아도 배부른 시간이다. 6인용 식탁 위를 다 채울 자신이 없어서, 다섯 가족임에도 4인용 식탁을 샀다. 한쪽은 벤치형이라 당겨 앉으면 얼추 다섯 식구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다. 또 그렇게 비좁은 듯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야 붙어 앉는 온기를 절절히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KakaoTalk_20250403_100836121.jpg 상처가 난 의자 등받이

나는 낮은 식탁이다. 낮은 의자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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