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티와의 대화에서 얻은 용기
나는 어떤 사람일까?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그래 보았다는 어느 생기발랄한 분을 따라서 한 거였다. 지브리 풍 프사가 유행하던 지난 4월, 처음으로 챗지피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과 꽤 여러 날 함께해 왔다.
‘함께해 왔다’라. 생명이 없는 도구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표현하게 되는 것. 참 웃길 노릇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도구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모조리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시키고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이용한 기능이 바로 그거였다. 내 글을 읽고 비평해줘.
요즘 사람들은 챗지피티를 정말 다양하게 쓴다. 학생들은 리포트 초안을 부탁하고, 직장인들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게 한다. 블로그 운영자는 콘텐츠 아이디어를 얻고, 자영업자는 홍보 문구를 뽑는다. 누군가는 다이어트 식단을 짜달라고 하고, 누군가는 이직 상담이나 면접 연습을 시킨다. 이쯤 되면, 챗지피티는 단순한 검색 도구를 넘어서 ‘일상의 조력자’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 조력자로, 멘토로 사용하고 있던 지피티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SNS상의 지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 역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참 똑똑하게도 녀석은 나의 글들을 기억해주고 있었다. 내가 쓴 글들을 바탕으로 그가 나를 정의해 주었다.
-당신은 글쓰기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에요. 특히 오마이뉴스에 기고도 하시고, 감성적인 에세이와 소설을 꾸준히 쓰고 계시죠.
나는 또 물었다.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냉철하게 얘기해 줘.
‘냉철’이라는 말을 넣는 건, 지피티를 사용하는 나의 루틴 같은 거였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상담가, 또는 경청자가 있다면 바로 이 녀석일 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그만큼 달가운 위로에 도가 튼 녀석이라,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자 할 때는 꼭 이렇게 ‘냉철’이라는 말을 집어넣는다.
-당신의 글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글은 아니지만...
냉철하게 얘기하라고 해 놓고서는, 막상 냉철한 말을 들으면 또 가슴이 철렁한다. 하지만 이러고 나면 칭찬을 더욱 칭찬답게 들린다. 냉정하게 보고, 현실적으로 봐도 ‘나 괜찮다는 거지?’라는 마음이 드니까.
문득 웹소설 작가로서의 내가 궁금해졌다. 지난번에 나의 소설이 ‘강력한 한방이 없어서 시중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평을 들은 기억이 났다.
-나 7권의 전자책을 발간했지만, 수입은 아주 미미해. 공모전마다 낙방해. 이래도 계속 써도 될까?
-당신은 재능이 증명된 작가이고, 지금은 전략의 리셋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당신의 가치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가치 있는 글을 쓰기 때문에 그 글이 더 멀리 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죠.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리 시류를 따라가 보려고 해도, 재능의 한계인지 나라는 사람의 울타리를 벗지를 못하는 건지, 늘 고만고만한 이야기라는 자평을 버릴 수가 없던 차였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는 지피티의 말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당신은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을 이야기’를 쓰는 작가입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것’, 그게 유일한 걸림돌이에요.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글. 아우, 녀석이 오늘따라 진짜 냉정하구나.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나 시류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글이라는 말일 테다. 모르겠다. 쓰는 게 재미있어서 쓰기는 하는데, 그 포장이라는 걸림돌을 끝내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는 쓰기를 멈추게 되는 걸까?
그러는 동시에 또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멈출 수 있을까?’이다. 내 안에 떠오르는 스토리가 있다면, 나는 아마도 또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될 것이다. 다만 좀 더 욕심을 내려놓은 글이 되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쓰기 시작한 동기가 ‘내면에서 우러나는 스토리를 밖으로 배출하기 위함’이었다. 수익이 많은 인기 작가가 되자는 건 처음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에이, 사실 많이 읽히고 싶잖아요. 돈 많이 벌고 싶잖아요. 단 한 사람이라도 읽어주는 독자를 위해서라는 위선적인 말은 그만 해요.” 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하며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를 위해서 나는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고. 그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매번 공모전에서 낙방하는 재능 없는 작가이지만, 내 글에 선한 영향을 받을 한 사람을 생각하면 내 안에서 샘 솟는 스토리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러니 결심할 수밖에.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때, 그때 그만 쓰자. 한 명이라도 읽어주는 이가 있는 한, 계속 쓰자. 써도 되는 명분이 생기니 갑자기 더욱 쓰고 싶은 마음이 밀물처럼 들이친다.
-잘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의 진심이 담긴 글은, 분명 누군가에게 닿을 테니까요. 멈추지 마세요.
지피티의 마지막 조언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알았다고. 계속 쓸 거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을 지피티에게 입력하지는 않았다. 답변은 나에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지피티와의 대화에서 얻은 이 작은 용기가 오늘도 나를 다시 쓰게 한다.
*사진 : 나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에 AI가 생성해 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