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이 된 듯한 자세로 필명을 바꾸고 도전한 결과
10년간 7권의 웹소설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2018년 2월 8일, 처음으로 출간 제의가 들어왔던 그때를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종이 공책에 샤프로 쓰고,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던 소설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블로그에 기재를 하고, 지인 몇 명이 보던 소설이었다. 결혼 후 인터넷 소설 연재처를 찾아 전편을 한꺼번에 연재해 놓고서는 임신 후 그 존재 자체를 잊었던 소설이었다. 세 아이를 낳고 기르는 세월 동안, 서랍 속에 고이 접어 두었던 꿈같은 글이었다.
2014년 가을, 셋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야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을 기재했던 블로그(파란닷컴)는 문을 닫았고, 그때 올렸던 글을 되찾을 수 없었다. 뒤늦게 들어가 본 인터넷 소설 연재처(조아라)는 그간 꽤 많은 독자가 왔다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래된 그 흔적을 제때 확인하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 들었다. 그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여다보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영향력 있는 웹소설 작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웹소설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웹소설의 세계가 낯설었지만, 적응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키보드로 작성한 글은 수기보다 속도가 빨랐고, 연재하는 방법이 간단했으며, 적은 인원이지만 불특정한 독자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연재처(로망띠끄)를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2018년 2월 5일, 이미 완결된 소설을 하루 한 편씩 연재하기 시작한 지 4일 만에 출간 제의를 받게 된 것이다. 4화 만에 출간 제의를 받고서 얼마나 가슴이 부풀었는지, 생각만 해도 어깨가 으쓱여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랍에 넣어두었던 꿈을 끄집어내어 멋들어지게 이룬 것만 같았다. 비록 전자책으로 발간한 7편의 웹소설이 드라마틱하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작가’라 불리면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첫 작품이 출간 제의를 받은 이후로는 이렇다 할 제의가 없었다. 3번째 작품이 이름 모를 어느 출판사의 제의를 받기는 했지만, 유명하지 않은 곳이어서 그 제의는 거절했다. 그 뒤로 7번째 책이 나올 때까지 제의에 의한 출간이 아닌, 투고에 의한 출간이 이루어졌다. 소설을 완결하고 나서 편집부에 모든 원고를 보내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교정작업에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출간 거부를 당한 적은 없었다. 고맙게도 편집부는 내 원고를 소중히 여겨 주었고, 훌륭한 교정자를 붙여주어서 무사히 전자책으로 발간할 수 있었다. 처음 수입 분할이 50대 50이었던 것이 지금은 60대 50, 내가 조금 더 가져오는 계약으로 발전했다. 제휴처에서의 수입은 70대 30인데, 다른 출판사와 계약해 본 경험이 없어서 이 분할이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입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분할이었다.
2023년 9월, 7번째로 발간한 책의 판매성적이 저조한 것과 맞물려 집필 속도가 느려졌다. 좀처럼 신나게 두드려 댈만한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웹소설 작가다!’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키보드 앞에 앉기는 했다. 그러나 도무지 글은 써지지 않았고,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나는 하나의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2024년 7월, 지금까지 활동하던 필명을 내려놓고, 새로운 필명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고민 없이 신나게 써 내려갔던 초심을 되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필명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플랫폼은 작가가 기존 필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 글의 상단과 하단에 이전의 출간작 소개가 노출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연재된 글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노출된 작품을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첫 출간 이후, 6개의 작품을 연재하면서 나는 나의 연재글 상단과 하단에 홍보하듯 떠오른 내 책의 표지를 언제든 볼 수 있었다.
또한 나의 필명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필명만으로도 읽기를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다시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라든지, ‘이번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등의 댓글이 새로운 작품의 1화에 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특혜가 있는 필명을 버리고 새 필명을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전 연재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독자들은 알 수 없다. 심지어 필자가 출간 경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일이었다. 신인들의 연재처에서 연재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신인 작가일 것이고, 오로지 연재된 글로써 판단 받고 선택받는 자리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필력 하나만으로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두근거리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씁쓸하게도 40화까지 연재가 되는 동안, 어느 출판사로부터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느리고 게으른 연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 몇 명이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인기는 여전히 없었다.
그러다 지난 1월 25일, 41화를 연재하고 4일째 된 그 날에 드디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계속 계약해 왔던 출판사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오늘 이렇게 연락을 드린 이유는 작가님의 작품이 전하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매력적인 설정을 눈여겨보게 되어 출간 제의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꽤 정성스럽게 이유를 제시하는 쪽지가 플랫폼 내 우편함에 도착했다. 처음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너무도 기뻤다. 무명으로 도전한 결과, 다시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나를 향한 효능감이 싹을 틔웠다. 나 계속 써도 되겠구나. 아직 가치를 알아봐 주는 분들이 있구나.
처음에 받았던 출간 제의처럼 일찍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졸이는 와중에 늦게나마 합격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메말랐던 마음에 한 차례 비가 내린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결론이 좋아서 드는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도전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능감이 싹을 틔운 이 마당에 집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재미를 느껴주는 이가 있을 때, 그 재미에 기꺼이 값을 치르겠다는 이가 있을 때, 실망이 아닌 만족을 주기 위한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독자를 만족시키고, 편집부를 만족시킬 때, 내가 느낄 만족감은 보장된 것이 아닐까.
망설이는 분들에게 지금 바로 도전하라는 권유를 드리고 싶다. 별것 아닌 이야기 같아도 어딘가에는 그 이야기에 가치를 부여해 줄 이가 있을 테니. 나만 만족하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줄 때 이야기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 않겠는가. 내 안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서사가 있다면 지금 바로 키보드 앞에 앉아 보시라. 그리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