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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더위를 건너는 사람들

-이열쓰열 최종 후기

by 금머릿

한여름, 펄펄 끓는 7월에도 글을 쓰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열쓰열’. ‘열을 열로 다스린다.’는 고사성어에서 착안해, ‘글로 이 여름의 열기를 이겨내 보자’는 뜻이 담긴 글쓰기 모임이었다.


계절마다 기획된 이 한 달 글쓰기는 봄에 이어 두 번째였다. 봄 모임의 이름도 기가 막혔는데, 이름하여 ‘봄폭쓰’. ‘봄, 한 달 폭싹 쓰겠수다.’라는 문장을 줄인 이름으로, 그 시기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제목을 재치있게 패러디 한 것이었다. 작명 하나에도 정성과 센스가 가득한 모임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무더위 속에서 과연 느긋하게 글을 쓰고 앉아 있을 여유가 있을까. 게다가 7월이면 아이들의 방학이 겹친다.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로 내보내고 나서야 겨우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을 쓰던 나에게 7월의 글쓰기는 선뜻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보통 봄이나 가을이 책 읽고 글쓰기에 좋은 계절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이 무더운 여름에 글쓰기를 그것도 한 달 내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신청자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놀라웠다. 20명을 모집한다는 공지에 최종 모여든 사람은 모두 30명. 나만큼 글로 소통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여성 25명, 남성 5명으로 그야말로 각자의 삶으로 바쁘디 바쁜 사람들이었다. 학교 교사부터 학원 강사, 직장인과 자영업자, 전업주부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거주지역 역시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으로 전국 각지에 퍼져 있었으며 인도네시아, 미국 등 해외에 계신 분들도 합류했다. 연령대도 폭넓었다. 60대 언니부터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산모까지.


우리가 한 달 동안 글을 통해 나눈 삶은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아주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가장 최근의 이야기까지, 각자 주제에 맞춰 돌아본 삶이 매우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계절이 여름이니만큼, 여름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마구 쏟아졌다.


더울 틈조차 없었다. ‘더워도 너무 더워요’라는 말이 단톡방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우리의 글은 더위보다 더 뜨겁게 이어졌다. 각자의 더위 극복 노하우는 글 속에서 활기를 띠고 살아 움직였다. 에어컨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여름철 별미의 레시피도 글 속에 녹아들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추억을 더듬었고, 나만의 애환인 줄만 알고 끙끙대는 이야기를 나누며 격한 공감을 이어갔다. 참 많이도 울었다. 웃기도 많이 웃었다. 나와 다른 모습에서 놀라기도 했고, 닮고 싶은 모습에 하트를 눌러대기도 했다. 참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게 되었고, 상승한 내적 친밀감과 더불어 많은 위로를 얻었다.


내 글을 써서 올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동료들의 글을 읽고 느낀 바를 댓글로 달아주는 방식은 그야말로 적극적인 소통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누구도 충고하거나 조언하거나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공감하고 따뜻한 피드백을 나눈다.


혹자는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평가받고 판단 받는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그리고 안전한 곳에서 받은 지지와 격려로 다시금 세상을 향해 당당히 각자의 걸음을 내딛게 된다고.


오늘 최종 후기를 작성하고 해당 온라인카페에 글을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이열쓰열’은 막을 내리게 된다. 저마다 한 달간 느꼈던 감동과 아쉬움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말이 아닌 글로 나누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다.


한 달 만에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확신하며 답할 것이다. 물론, 이라고. 사람이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속도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누군가의 글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공동체에서 한 달이면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 있다.


내 글을 쓰는 시간만큼, 다른 이의 글을 음미하는 시간도 중요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젖어 들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야 한다는 규칙은 모난 나의 시선과 다소 비뚤어진 내 마음을 정돈하게 했다.


긍정할 게 쉽게 보이지 않을 때라도 기어이 칭찬할 거리를 찾아내고 끝내 긍정을 전달하는 동안, 결국에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상황이 열악할수록 글을 쓰고 나눠보기를 권하고 싶다. 서툰 글이어도 상관없다. 내 이야기를 글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이러한 나눔을 경험할 수 있다.


글쓰기 자체가 시간을 들여야 하는 행위이니,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고속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돌아보고, 누군가를 존재로 바라보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지켜가는 길이고,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 방법일 테니까.


나를 발견하는 일. 누군가를 존재로 존중하는 일. 시간을 할애해서 마음을 나누는 일.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글쓰기 모임은 곧 다가올 가을에도 계속된다고 한다. 혹 당신의 동네에서, 혹은 온라인에서 비슷한 모임이 열린다면, 주저하지 말고 참여해 보길 권한다. 그 계절, 나의 참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행운이 따를지도 모르니 말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8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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