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소리가 안 나(2)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by 금머릿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친정 가족들은 내 마음을 도닥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임신 중이고 유산기가 있는 중이었는데, 그 사건이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굉장히 염려해 주었다.


그때 보살펴주는 가족들 안에서 나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그때 일을 돌아보면 마음 한편 자그마한 죄책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의 쿵 소리가 멈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적어도 쿵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아들에게 알려주기라도 했다면, 아들은 좀 더 아버지를 자주 들여다 보았을까? 쿵 소리 멈춘 게 이상하니 한번 찾아오라고 연락했다면,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이 썩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까?


수도세를 받기 위해서라도 그 집 문을 한번 두드려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픈 사람 들여다보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나는 할아버지의 ‘수도 요금을 그저 내가 다 내는 것’으로 관계 맺기를 포기했었다.


고독사. ‘나 홀로 죽음’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나의 경험처럼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3, 40대 사회부적응자들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비혼주의 증가로 인해 독신 가정이 늘고 있고, 출산율 저하로 인해 외동 자녀가 증가한 것도 고독사의 원인으로 꼽힌다. 거기에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고독사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다’라고 우리는 가끔 외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혼자임을 받아들였다기보다 외로움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고자 하는 방어적인 발언이 아닐까?


‘은둔형 외톨이’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단절을 주장하며 방안에서 하는 일이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가치 있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공유의 시간이 확보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일 테다.


나를 보듬기 위해 애쓰는 가족들 사이에서 안온함을 느끼면서도, 홀로 죽음을 맞이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릴 때면 입 안 어딘가에서 씁쓸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2층에서 작은 생명이 뱃속에서 꿈틀대는 동안, 1층에서는 고독한 이에게 죽음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상상했다. 서로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사회. 우리가 서로에게 보낸 작은 관심과 배려가 모여, 더 안전하고 온기 가득한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도, 가족과 이웃이 서로를 보듬는 마음이 지켜지는 세상 말이다.

이전 09화쿵 소리가 안 나(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