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든 게 아니었네(1)

흔하디흔한 출산 여정기

by 금머릿

시험 끝났다고 몇 시간째 휴대전화와 연애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벽에 걸린 아이의 백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걸어두었던 사진이,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는 데 사용될 거라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어찌 되었든 효과는 직빵. 아련해진 마음으로 다시 아이를 돌아보자, 무언가와 겹쳐 보인다.


한쪽 머리가 크게 부어오른 신생아의 얼굴. 젖을 양껏 먹은 뒤 포만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벌어졌던 입. 그 입을 헤 벌리고 곯아떨어졌던 작디작은 얼굴... 아이를 만나던 날의 일이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밤중이라고 표현될 만큼 이른 새벽에 규칙적인 진통을 감지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자신만만했다. 몇 번 세게 힘만 주면 아기를 금방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산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적잖이 들어왔지만(그래서 사실 조금 쫄기도 했지만), 그 모든 험난은 나와 상관없을 거라 믿었다. 나는 이제 막 20대 후반에 들어섰고, 초반에 유산기가 있었던 것 말고는 산전 검사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로 출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남편이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부산까지 아무리 오래 걸려도 4시간 반. 나는 그가 도착하기 전에 아기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 고민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는지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진통은 14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아기가 내 몸을 찢기라도 하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사극에서나 봄직한 거열형(사람의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묶고, 그 수레를 반대 방향으로 끌어서 찢어 죽이는 형벌)이 이와 같을까. 호흡을 이렇게 하라느니, 힘을 이렇게 주라느니 옆에서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 가며 조언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14시간 내내 쉬지 않고 고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이 진하게 온 뒤, 잠깐의 무통이 오는 식의 과정이 반복됐다. 진한 고통 뒤의 무통의 순간은 거친 오르막길을 겨우 오른 뒤, 숨 고르며 쉬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쉼도 잠시, 오르막은 다시 시작되었고 넘어야 할 고개는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반복되는 고통이 어느 시점에서는 공포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진통은 오후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아기 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내진하던 의사는 분명 스마트한 어조로 말했었다. 이 정도 속도면 저녁 7시쯤에 아기가 나오겠다고. 정상이 곧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조금만 더 고생하면 끝나는 거야. 힘내자, 파이팅!"


남편도 웃으며 말했고, 나도 힘을 내며 웃어 보였다. 먹은 것이 없고 관장까지 한 마당에 대체 어디서 힘을 끌어와야 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끝이 보인다고 하니 웃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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