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검객(2)

레비나스 읽기(9), 10월 12일 단상

by 김요섭


'자아의 유일무이성은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레비나스



힘에의 의지


그의 몸 주변으로 푸르스름한 강기가 일어난다. 계곡의 바람은 그를 휘돌아 흐르고, 풀은 넙죽 엎드려 고개를 숙인다. 푸른 장벽은 내기의 흐름과 함께 점점 원형으로 커진다. 주변의 나뭇가지가 파르르 떨린다. 그러나, 사도는 평온한 모습으로 서있다. 그곳에 원래부터 있었던 무감한 바위처럼 그를 의아하게 한다. 상대방의 살기를 느꼈을게 분명한데 전혀 반응이 없는 것에 조바심을 느낀다.

'저놈은 강한 살수임은 분명해. 그런데 어찌 사악한 기운도, 내기마저 느껴지지 않는 것이지?' 그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사도가 내공을 숨길 수 있는 반선지경(半仙之境)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저것은 살수로 길러졌을 뿐이다. 사파의 기운으로 어찌 신선처럼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는 낯선 것은 그를 긴장시킨다. 심연에서 올라온 두려움은 이해되지 못한 채 그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떠돈다. 들뜬 모습의 그와 달리 한 그루의 나무처럼 서있는 상대는 더욱 심란하게 한다.


'적이 어떤 존재든 나는 나의 칼을 들뿐이다' 그는 여러 번 속으로 되뇌며, 자신의 내공에 집중한다. 호신강기의 파란 형태는 훨씬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사도를 다시 노려본다. 검은 도포를 입고 눈만 내놓고 있는 저것의 속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자신의 강한 기운이 전혀 반향 되지 않고, 사도 너머 어딘가로 흩어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곡 사이 좁은 공터가 광장처럼 넓게 확장되기 시작한다. 공간감이 비현실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어떤 살수와의 대결에서도 이런 묘한 기운에 휘말린 적은 결코 없었다. 이것은 혹시 주화입마의 위험에 노출된 최근의 문제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심마(心魔)의 미혹 같은 것일까?' 그는 고민하는 와중에도 정신의 교란을 눈치채지 못한다. 문득 사도의 눈매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검은 천 뒤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의 의문과 달리 사도는 어떤 해석도, 비교도 거부한 채 무심히 서있다.


'유개념을 거부하는 것. 그것은 여기서 자아라고 하는 존재자의 몇 가지 측면의 하나가 아니라 그 내용의 전부인 것이다. 자아란 내재성을 말한다. 자아는 내 집에 있다.'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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