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읽기(11), 구제에 대하여, 10월 11일 단상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의 신의 선이다' -가우디
인간의 시간성
그녀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른다. '지나가버린 것은 어쩔 수 없잖아. 모든 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하면서, 비루한 과거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그럴 이유가 있었어'라고 말하면서 그녀의 내장은 후회하고 우울해한다.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믿는' 허위의식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과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그녀는 지독한 원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짓밟힌 과거와 만족할 수 없는 현재는 복수의 칼을 갈도록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강탈당했다고 생각하며 막연하게 약탈자를 찾는다.
그러나 화살은 과거로 돌아가 다시 의욕할 수 없다. 현재에 갇힌 그녀의 의지는 기웃거리고 두리번대지만 진짜 강탈자를 찾지 못한다. 시스템은 보이지 않고 지배하며, 찾는다 해도 성벽의 차가운 돌을 만질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벽을 찾을 수만 있다면 한계까지 사유한 것이기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는 복잡다단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세밀함이나 상처를 안고 나아가는 단호함을 갖추지 못했다.
애매하고, 호기심만 갖춘 언어로는 적을 상대할 수 없다.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대지를 지탱하기도 버겁다. 무시무시한 우연을 감당할 수 없어 산만해지고, 진짜 이유도 모르고 무엇을 하느라 바쁠 뿐이다. 결국 '나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어'라는 상대주의로 퉁치고, 대결을 회피한다. 존재를 건 결단해야 할 때 도망치고, 거울 앞에서 영문도 모르고 우울해한다.
안타깝게도 기웃거림을 당하며 사라진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존재다. 슬픔의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이유도 없이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아펙툼적 무의식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다. 대상을 찾을 수도, 납득할 수도,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는 공허감은 둔탁하게 피를 흘린다. 지연된 싸움은 밤중에 도둑처럼 찾아와 그녀를 찌른다.
'지나가 버린 것을 구제하고 모든 그러했다를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구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니체
곡선의 시간성
직선의 시간성에 사는 오늘은 산산이 부서진 파편의 한 조각이다. 그것은 시간의 결과이긴 하나, 시간 속에서 익어간 작품은 아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도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을 감당하는 것. 그녀의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한다'로 새롭게 쓰여야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섞이는 일은 오직 '내가 원했다'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시간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와해될 뿐이다.
그러나 곡선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처절한 고독의 시간을 감내하는 것, 골리앗과 같은 적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두발로 서있는 것과 같다.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로 자신의 둘러싼 세계와 맞서는 강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내재성은 자연스레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힘들지만 과거의 편린을 모으고 분류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서 하나씩 직면해야 한다. 이 과정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를 '내가 원했다'로 바꾸는 연금술과 같은 일이다.
수수께끼 같은 모호함을 이겨내며, 징후적으로 읽고, 무시무시한 우연을 껄껄 웃을 수 있는 필연의 퍼즐로 다시 맞추는 것. 그것은 존재를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하는 창작이며, 존재자에 대한 최고의 환대다.
그러나 이는 고독한 사자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그녀의 '나는 원했다'는 아직 너무 무겁다. 피를 흘리고 있는 거울에는 과거의 원한이 중력의 악령처럼 달라붙어 있다. 레테의 강물을 마시는 새로운 놀이가 시작되어야 한다. 자신이 길어 올린 물로 최초의 수레바퀴를 돌려야 한다. 거울마저 깨부순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거울 없이 자신을 볼 수 있다.
'모든 그러했다는 파편이자 수수께끼고 무시무시한 우연이다. 창조적 의지가 그것에 대해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고 말할 때까지는.'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