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칼에 찔리다

작가란 무엇인가 읽기(2), 움베르토 에코, 10월 10일 단상

by 김요섭

'언제나 훌륭한 책은 작가보다 더 지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작가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지요.' -에코



무한의 칼에 찔리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무의식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심연 어딘가에 그도 모르는 진실이, 언어라는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다. 글을 쓰는 동안 불시에 도착한 '고도'는 작가의 몸을 찌른다. 무한의 칼에 찔린 피의 흔적은 유한의 언어를 풍성하게 한다. 물론 무한이 유한의 수단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멀리서 오는 별빛의 축성(祝聖)이 없다면 인간은 관성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재앙의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현존재의 끝없는 울타리를 '미로 안에서 탈주'하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의 굴레를 벗어날 '불가능의 가능성'은 오직 판단 중지의 순간에 생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텍스트는 결코 아름답게 읽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로 너머로 도약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모든 피로 쓴 글은 탈출의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이후 땅으로 곤두박질쳐질 수밖에 없는 유한자의 운명은 서늘하다. 온몸의 생채기와 꺾인 관절의 통증에도 작가는 서둘러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한의 언어는 유한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 작가는 쓸 수 없는 것을 써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상징의 언어'는 묘사할 방법이 없는 무한의 세계를 위해 그가 선택한 우회로이다. 부재의 현존을 위해, 다시 한번 도래하는 축제를 위해, 가장 모호하고 다의적인 언어를 통해 무한을 영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어느 날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다음 날 그 사랑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슬프게도 감정이란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그리고 자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랍니다.' -에코



그도 모르는 몫까지 주는 것


에포케 여신의 사랑을 받은 작가는 너덜너덜해진다. 무한의 도래와 작가 자신의 피를 대가로 치른 텍스트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세례를 듬뿍 받았다. 관성적으로 사는 인간의 의식적 언어를 넘어서고, 어떤 인식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미로 탈출기는 상징의 언어로 남겨졌기에 텍스트는 작가보다 더 위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쓰는 이가 작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완전연소될 때, 텍스트는 피로 써질 수 있다. 창조하는 아이를 위해, 작가는 기약 없는 시간 동안 '고도를 기다리며' 모든 순간을 예술적으로 만든다. 성과사회에서 아무도 올려다보지 않는 별을 지키고, 오직 사랑을 열망하며,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무용한 인간이 될 때, 작가는 비로소 그도 몰랐던 진실을 선물 받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선물은, 받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만다. 무한은 유한의 세계가 품을 수 없는 것이기에, 도래하는 순간 사라진다. 완성의 순간, 작가는 이별의 아픔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것이다. 줄 위의 광대는 이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널 수도 없는 일에 직면한다. 이대로 미끄러져 추락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서늘함만 남았다. 찢긴 존재, 축제 중간에 배제된 인간, 작가는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지독한 아름다움을 위해 다시 한번, 환희 속에 고통받고, 사랑하며 이별하고, 축복 속에 재앙을 받는다.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본분, 아니, 특권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며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The impossibl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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