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단상
낯선 것의 등장
코끝을 자극하는 낯선 체취가 진동을 한다. 그는 오른쪽 벽을 더듬어서 불을 켠다. 간이침대에 낯선 것이 엎드려있다. 바닥에는 세르반테스의 책이 떨어진 채, 배를 훌쩍 내보이고 있다. 그는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멀찍이 낯선 존재를 훑어보기 시작한다. 짙은 카키색 후드 아래로 검은 가죽바지를 입은 이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160센티도 안되어 보인다.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왜 남의 침대에 누워있는지. 혹시 파티 후 과음을 한 탓인가 싶지만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는 걸 생각만 해도 역겹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인간의 농축된 체취는 다른 냄새를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아니 술을 마셨다고 해도 그렇지. 담을 넘어서 남의 집 2층 옥상까지, 난간도 허술한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고? 코스프레 복장을 이렇게 오랫동안 벗지 않았다고? 그의 후각과 달리 이성은 불가해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문턱을 반쯤 걸치고 선뜻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골똘히 생각을 해도 아구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160도 안 되는 체구는 유사시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망토처럼 풍성한 후드에 어떤 흉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턱에서 몸을 안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바깥으로 코를 내밀었다. 금성이 홀로 서쪽을 밝히고 있는 하늘이 보인다. 다시 방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을 보라는 듯 배를 내밀고 있는 돈키호테가 보인다.
그는 뭔가 결심한 듯 심호흡을 크게 한다. 잠시 멈췄다가 방 안으로 들어간다. 후드 입은 이에게 눈을 떼지 않고 사뿐사뿐 걷는다. 숨을 참고 좁은 걸음을 네 번 디딘 후 책상 오른쪽 서랍에 숨겨둔 담배를 꺼냈다. 엄마의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는 것처럼 손이 떨린다. 라이터를 두 번이나 놓치며, 딸그락 소리가 났다. 식은땀이 흐른다. 갑자기 후드 입은 이가 몸을 돌려 누웠다. 그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앳된 소녀 아니 미소년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얼굴을 찡그린 모습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아하니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경계심을 잃고 모호한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몸을 웅크린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는 전등을 껐다. 난간 앞에 서서 라이터를 켰다. 세 모금을 연거푸 들이마신 후에 그는 생각했다. 그냥 빨리 깨워버릴까? 무슨 영문인지 사연을 듣고 싶다가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잠든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 아직 초저녁이니 깰 때까지 기다려보지 뭐.
성별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얼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체취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밤마다 별을 보고, 흐릴 때는 책을 보며 상상했던 낯선 것을 현실로 맞닥뜨린 느낌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낯선 타자의 도래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 그동안의 삶은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연거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피웠다. 1층의 삶과 다른 옥탑의 밤은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분명했다. 낯선 것을 동경하고 신비한 존재가 되는 일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밤하늘의 별을 지키고,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을 믿고,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읽은 것은 진짜였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진짜 낯선 것이 들이닥친 지금, 그냥 익숙한 것이 방해받은 듯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가 동경한 것은 그저 관념일 뿐인가? 심란해진다. 그는 다시 한번 불을 피운다. 어쨌든 새로운 존재가 되길 바라긴 했어도, 이런 방식은 아닐 거라는 애매함 같은 것을 숨길 수가 없다. 그의 시선은 피어오르는 연기를 쫓아간다. 불규칙적인 곡선이 유려하게 밤하늘 사이로 유영하다가 곧 소멸한다. 그는 다시 불을 뿜고 내뱉는다. 그리고 사리지는 것을 여러 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