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을 향한 시간

김준산 읽기(7), 비트겐슈타인, 10월 28일 단상

by 김요섭



그녀를 향해


그는 창을 열었다. 검은 비가 얼굴을 때린다. 머리를 흠뻑 적시고 내려온 것이 뺨을 가르고 흐른다. 아직 아물지 않은 볼의 상처가 따끔거린다. 창을 닫았지만 들이친 빗물로 몸이 흠뻑 젖었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러면 더 느껴질 것 같았지만, 그녀가 말한 낯선 감흥은 아닌 것 같다. 일상적인 체험과는 다른 건 분명한데 왜 안 느껴지는지 답답하다. 문득 조곤조곤 책을 읽는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닫혀있던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방을 닦으면서 어제 읽었던 문장을 떠올려본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혹시 이런 게 문제일까? 그는 책상 위의 빨간 책을 열었다.


'예술은 현존의 견딜 수 없고 끔찍한 면들을 마술로 사라지게 해주는 구원하는 마술사, 능숙하게 치료해주는 마술사이다' -니체


어제 설명을 들었는데 뭔가 다 지워진 것 같다. 현존이 지금의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던 것 같고... 물론 기억난다고 해서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니체가 말하는 소위 예술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자신이 견딜 수 없는 것, 끔찍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한다. 돈이 없는 것...? 큰 병에 걸리는 것? 하고 혼잣말을 해본다. 큰돈은 없지만 먹고사는 것 같고, 끔찍한 병에 걸린 적은 없지만, 아 참, 걸려서도 안되지, 음... 그렇다면, 마술이 필요 없는 것 아닐까. 사는 게 예술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암튼 나 같은 사람은 치료가 필요 없으니깐 말이야.


그녀의 안타까운 표정이 떠오른다. 아 참 이런 식으로 퉁치면 안 된다고 했지. 그녀를 속상하게 할 수는 없지. 머리를 긁적이자, 미지근한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렇지 언젠가 병에 걸릴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럼 예술이 필요해지지. 그러면 지금은 괜찮고? 아, 갑자기 복잡해진다. 단순하고 딱 떨어지는 객관식 정답 같은 것이 그에겐 맞다. 이런 식의 모호한 일은 그와는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잘하고 싶다. 지금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언젠가는 잘 입고 나타나서 짠하고 그녀에게 보이고 싶다. 그런 감정은 예술과 상관없는 것일까? 인문학은 질문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진짜 묻고 싶은 것은 물어볼 수도 없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다. 괜히 쏟아지는 비에 창문을 열어가지고, 이 고생을... 구시렁대며 그는 보일러를 켠다.


그래도 인문학 공부가 싫지 않다. 그는 샴푸 캡을 눌러서 손에 뿌린다. 같이 독서 모임을 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몇몇의 얼굴이 떠오르다가 그녀의 얼굴만 남고 다 흐릿하게 물러나버린다. 우리가 밤마다 나누는 대화가 어쩌면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는 주로 듣다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수준이지만 그건 뭐 부끄럽지 않다.

이것도 빗물을 맞은 효과일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한 느낌이 든다. 만족한 얼굴로 두피를 부드럽게 만지며 거품을 낸다. 그래, 이런 느낌이지. 하루의 찌꺼기를 씻어주는 시간 같은 거 말이야. 그는 예술은 잘 몰라도 독서 모임에서 받는 느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녀의 활짝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연타석으로 안타를 친 느낌이 들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뭐 이 정도도 괜찮지 않나. 나 같은 사람은 고목에서 싹이 트는 것처럼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름 잘 깨치고 있는 중일 거야. 그는 스스로 납득시키며 머리를 감는다. 순간 헹군 물이 오른쪽 얼굴의 상처로 흘러들어 간다. 찌릿한 통증에 질겁을 하는 순간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그녀를 만날 시간이다. 갑자기 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다.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꼭 그녀가 어루만져줄 것 같다. 혹시 이런 것이 예술과 비슷한 느낌인가? 아픈데도 좋은, 고통 속에 환희가 있는 그런 역설적인 상황 같은 것. 그녀도 이런 것하고 비슷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한다.

곧 온라인 모임 시작될 시간이다. 그는 핸드폰에서 화상 채팅앱 찾으며 책상에 앉았다. 접속 전에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카메라에 잡힌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우리는 이상이 실재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관념 속에서 산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것이 거기서 어떻게 발견되는지는 알지 못하며, 또 이 되어야 한다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상이 실재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그 속에서 이미 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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