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을 향한 걸음

한병철 읽기(16), 리추얼의 종말, 12월 1일 단상

by 김요섭



부정성의 환대


차이 있는 반복은 부정성을 환대하며 새로워진다. 그러나 아펙툼적인 것을 원하는 그는 타자성에 머무르지 못한다. 흥분과 새로움은 긍정성의 테두리에 머문다. 어쩌면 구글의 AI는 자신보다 그를 더 잘 알고 있다. 검색어, 쇼핑 목록, 시청한 유튜브 영상은 현존재로서 자신과 동일하다. 짧은 로딩 시간을 참지 못해 화가 나거나, 영상이 지루하다 싶으면 바로 다른 영상으로 대체하는 것도 그의 미학적 신체다. 바깥이 없는 이는 체제의 아비투스를 자신의 욕망으로 여길뿐이다.


얕은 호기심과 말초적 쾌락은 머무르지 못한다.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재앙과 같은 타자의 도래는 더더욱 감내할 수 없다. 유한성에 정주당한 것은 장소 없는 실재계를 향한 머무름과는 다르다. 현실이 포월 할 수 없는 바깥에 속한 것은, 이곳에 있는 동시에 무한의 장소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재앙의 폭과 심도를 가진 것을 유한에 속한 존재자가 상대하는 일은 기다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계속할 수 없는 것을 계속하면서 생기는 단단함과 인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가능성, 단 한 번의 사건에 모든 것을 거는, 그것밖에 모르는 일이다.



초인을 향한 걸음


초인을 향한 걸음은 곡선의 시간성이다. 거인의 폭과 심도를 가진 걸음이 유한성의 틀을 넘어선다. 자기초과는 멀리서 오는 자를 향한 걸음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가능성이다. 기약할 수 없는 도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일이며, 가늠하기 어려운 도약이다. 이 같은 기투(企投)는 한 번의 도약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말인성과 같지 않다. 자신을 던지는 외양은 일견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전혀 다르다. 낮은 자의 도약은 나르시시즘적이며, 그곳을 지향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이를 향한 사랑은 소비되지 않는다. 온갖 부조리와 막연한 희망, 뿌연 안개 같은 일상과 무뎌지는 감각. 포기하지 않고 움튼 작은 촛불 어딘가, 낯선 것은 다가온다. 타자를 지향하는 사랑은 오랫동안 장소 없이 축적된다. 알 수 없는 그곳은 무한 속의 유한, 현실 속의 바깥 어딘가 있다. 영원회귀적 장소는 오직 아름다움의 도래와 함께 균열된다. 저 머나먼 별빛 어딘가에 있던 것이 어느 순간, 지금 여기. 축복처럼 쏟아져 내린다. 어떤 언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은 존재자에게 각인된다. 직선의 시간성에 압착되었던 신체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찰나의 순간 그는 무엇이든 가능해진다.


'일용할 양식은 매력이 없다. 매력은 순식간에 빛바랜다. 반복은 매력 없는 것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 실낱에서 집약성을 발견해낸다. 반면에 늘 새로운 것,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이미 있는 것을 간과한다.'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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