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은 사회문화적으로 확립된 공명 축들을 세운다. 그 축들을 따라서 수직방향(신과 우주와 시간과 영원과의), 수평 방향(사회적 공동체 안의), 그리고 대각선 방향의(사물들과의) 공명 관계가 경험 가능하게 된다. 공명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에게로 되던져지고 독자적으로 고립된다.' -한병철
그녀의 공명축
어두운 밤, 그녀는 그곳을 향해 있다. 테라스에 기대어 별빛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만져질 수 없는 곳으로 천천히 손을 뻗는다. 뭉게구름처럼 펼쳐진 은하수 줄기를 따라 어루만지듯 손을 쓸어내린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긴 꼬리를 내밀며 순식간에 별똥별이 사라진다. 불꽃의 마지막 흔적이 있는 곳으로 그녀의 눈동자는 향해있다. 밝은 빛을 선물하고 사라져 간 곳을 손가락으로 포집어 본다. 계속 빛을 내는 항성과 달리 별똥별은 그녀의 심연까지 날아든다.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검은 밤하늘은 무심히 빛난다. 쏟아지는 빛의 생성과 소멸은 존재자에게 다른 가능성을 연다. 불가능한 것을 잉태한 그녀는 무녀처럼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똥별의 흔적은 무한의 밤하늘에 허락된, 단 한 번의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화려한 빛으로 장식하는 죽어감의 사건이다. 극단을 허용하는 이미지 능력은 헤테로피아적 장소를 생성한다. 미로 속에 갇힌 존재에게 아득히 먼 장소를 선물하며 사라져 간다.
리추얼의 장소성
리추얼은 해어질 수 없는 장소이다. 무한을 향해 분열하며, 하나가 되고, 해체한다. 지배 없는 전체성은 한 번도 생성된 적 없는 장소를 생성한다. 그곳은 유한에 도래한 무한이자, 주체 안의 타자, 장소 속의 비장소로 현현한다. 리추얼은 존재자의 인식에 상징으로 들어와 있으나,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해석되지 않기에 비밀로 남고, 비로소 아름다움은 온전히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
'리추얼과 예식은 존재의 까마득한 구렁텅이로부터 보호한다. 예식은... 집처럼 보호한다. 느낌을 거주 가능하게 만든다. 예컨대 슬픔을... 장례식은 니스칠처럼 피부 위에 덮여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피부가 참혹한 슬픔의 화상을 입지 않게 보호해준다.' -한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