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무한 읽기(14), 레비나스 강독, 2022년 1월 9일
레비나스 : 이것은 제가 모리스 블랑쇼에게서 발견한 주제입니다. 비록 그가 '그저 있음'이 아니라 '중립적인 것' 내지 '바깥'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는 굉장히 암시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는 존재의 '소요', 그 '웅성거림', 그 '중얼거림'에 대해 말합니다. 벽 뒤로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는' 어느 호텔 방에서의 밤. '그들이 옆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저 있음'에 매우 가까운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마음 상태'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대상화하는 의식의 종말, 심리적인 것의 전복에 관한 문제입니다.
네모 : 무섭든 아니든 이러한 '그저 있음'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건가요?
레비나스 : 블랑쇼에게 이것은 더 이상 존재가 아니며, 어떤 것도 아니고, 또한 무언가를 말한 것도 철회해야 합니다. - 그것은 존재도 무도 아닌 사건입니다. 블랑쇼는 자신의 마지막 책에서 이를 '재앙'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죽음을 뜻하지도 불행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존재의 고정성으로부터, 어떤 별과의 관련으로부터, 모든 우주적 존재로부터 분리되었을 한 존재로서 재앙을 뜻합니다. 그는 재앙이라는 명사에 동사에 가까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런 광폭하고 강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에게 불가능해 보인 것 같습니다. (중략) 요건으로서 제시되는 것은 '그저 있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비-의미로부터 벗어나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존재에서 존재자로'에서 저는 동사적 의미로 취해지는 존재의 다른 양태들을 분석했습니다. 피로, 무기력, 수고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 존재 앞에서의 두려움, 무력한 물러섬, 탈출, 그리고 결과적으로 여전히 거기에 있는 '그저 있음'의 그림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1.
불면의 사태, 의식의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비의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닌 자로서 잠들지 않고 그곳에 있다. 안방 문의 경첩 사이, 손이 뻗으면 닿을 벽면의 주름 사이, 배게와 매트리스의 틈새 어딘가, 분명 그것은 여기 있다. 물러나 있고, 보이지 않으나, 가까이 있으며 무언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듯하다.
불면의 밤, 몽롱한 의식은 계속 그곳으로 향한다. 나는 그것을 파악하고 싶지만, 미지의 상대는 결코 대상화할 수 없다. 인식되지 않고, 물러나 있으나 나와 관계하는 그것은 두렵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려 할수록 미끄러질 뿐이다. 블랑쇼의 '호텔 방 벽 뒤로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는' 사건은 이러한 비존재 사태를 말하는 것이다. 인식으로 환원할 수 없고, 의식의 죽음에 가닿게 하는 무기력, 그것은 재앙이다.
2.
'존재가 아니며, 어떤 것도 아니고'의 의미는 실존에 닥친 재앙이다. 지붕도 없고 바닥도 없는, 부유하는 어둠 속으로 다가서는, 실존의 장소와 시간마저 잃어버린 곳으로 비인칭화 되어가는 존재. 자신의 내면성을 위한 어떤 고정점도 없고, 지향되어야 할 목적점도 없는, 장소 없는 장소. 차안도 피안도 아니며, 실제도 관념도 아닌, '광폭하고 강박적인' 것은 진짜 재앙이다.
그것은 비존재이며, 비인칭이며, 무엇도 아니기에, 존재의 기투는 작동하지 못한다. 불안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재구성하는 현존재. 그 힘에의 의지는 재앙이라는 절대적 타자성 앞에 의미도 사건도 상실한 채, 무화될 뿐이다. 자신의 선택이라는, 유한성에 기입된 유일한 무한의 감각마저 샅샅이 흩뿌려지고 만다. 탄생과 죽음의 피투성에서 유일한 실존의 시간인, 곡선의 시간성의 환희도, 재앙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뿐이다.
3.
비록 이기지 못할 상대라고 하더라도 실체가 있다면 검을 휘두르기라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존재의 주변 곳곳에 공기처럼 있는 비인칭적인 어떤 것에 존재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보이지도 않고, 모든 사건에 기입되어 있는 '그저 있음'.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았지만, 어떤 감정도 인과율도 없이 존재를 무화시키는 재앙. 그것은 그저 있을 뿐이다.
레비나스는 '무력한 물러섬, 탈출, 존재 앞에서의 두려움'이라는 언어로 존재의 '무기력, 수고'를 대비시킨다. 재앙 앞에 선 존재의 무력한 물러섬. 불가능의 가능성을 향한 일말의 시도조차 허용되지 않음. 완전한 무기력, 오직 무화되는 일밖에 남지 않은 사태. 그 서늘한 과정 속에서 레비나스의 '탈출에 관하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벗어날 수 있을 울타리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명사형 재앙도 아닌, 동사성의 무화된 세계는 탈출이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시도의 수고로움도, 결과적으로 여전히 '그저 있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