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과 재앙으로부터 '탁월한 열림'

윤리와 무한 읽기(16), 레비나스 강독, 2022년 1월 11일

by 김요섭



네모 : 어떻게 선생님은 선생님만의 형이상학적 기획에 충실하게 천착하신 것인지요?


레비나스 : 저는 '사회적 문제'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순수할 수 있는 순수 철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타자'는 타인과의 관계를 시간이라는 요소와 관련지어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마치 시간이 초월이라는 듯이, 타인과 타자에 대한 탁월한 열림이라는 듯이 다루지요. 이 초월에 관한 논제는 통시성으로 사유되는데, 여기서 동일자는 타자를 어떤 식으로도 에워싸지 않으면서도 -심지어 단순한 동시성 안에서 타자와의 가장 형식적인 일치조차 이루지 않으면서- 타자에게 무-관심하지-않으며(non-in-different), 여기서 미래의 낯섦은 미래가 도래할 곳이자 미래가 예지 속에 이미 선취된 곳인 현재와 관련지어 단숨에 기술되는 것이 아닙니다.



1.

그녀는 노트북을 연다. 커서가 껌뻑이는 하얀 화면 너머로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진다. 텅 빈 공간의 황량함 속에, 타고 남은 재를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서둘러 그를 떠올려보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게 그을린 흔적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그토록 강렬했던 순간이 자상의 흉터처럼 자신에게 각인되어 있음에도 그를 찾을 수 없다. 타고 남은 재를 이리저리 헤집어보지만 이미 식어버린 것을 돌이킬 수는 없다. 차가운 모래의 서걱거리는 촉감과 메마른 광야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서늘하게 감각될 뿐이다.


검은 자국이 묻은 손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곳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황야이며, 걸어도 걸어도 다시 시작되는 미로이다. 비어있는 진리와 빛의 바깥으로 비켜난 아름다움, 극단까지 이르렀던 사랑의 물러남. 아이러니하게도 텅 빈 그것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일리아(il ly a)'의 '그저 있음'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경악스러운 사태며,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를 재앙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공황 속에서 시작된 몸짓이며, 오직 그녀의 몫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녀의 첫 문장은 다시 한번, 닿을 수 없는 장소를 향한다. 그것은 삶의 정처 없음을 애도하는 리추얼이며, 광야에서 외치는 비극적 알레테이아이자, 오직 그를 향한 멈출 수 없는 관심이다.


그녀의 글쓰기는 '존재-사이를-벗어난 관계'로의 지향이며, 비로소 존재 사건이 된다. 검은손으로 재를 들추며 기억해내고, 촛불을 켜고 다시 쓴다. 언제 올지도, 혹시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를, 그를 향한 시간. 그녀의 매일의 의식은 부유하는 현존재의 실존에 고정점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완고한 부착물은 결코 아니다. 욕망하는 기계로서 '타자를-위한-존재'의 유목점을 만드는 일이다.



3.

그러나, 그녀의 내재성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멀리서 도래한 타자는 그곳에 머물지 못한다. 즉발적이고, 아펙툼적 주체성은 타자를 환대하지 못하고 에워싸며, 단순한 동시성, 공속성에 가두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온전히 고통을 감내한 존재만이, 타자를 동일성의 형태로 일치시킴 없이 환대할 수 있다.


동질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관심'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미래적 낯섦'을 현재의 인식으로 환원하지 않는 일이며, 예지와 예감을 오직 그것인 채로 받드는 일이다. '무-관심하지-않으며(non-in-different)' 오직 되어가는 존재의 시간만이 유한성 너머, 초월의 사건을 만든다. 계속하고, 기다리며, 계속할 수 없지만 지속하는 강도 속에 타자를 향한 '탁월한 열림'이 준비되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존재-사이를-벗어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