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 첫째 경우에, 우리는 벌이나 개미의 사회처럼, 사회 내부의 규제를 형성하는 정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개념입니다. 둘째 경우에, 정치를 능가하는 윤리적인 또 다른 자연에 관한 보다 고등한 규제가 있습니까?
레비나스 : 정말로 정치는 언제나 윤리에 기초하여 점검받고 비판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번째 형태의 사회성은 각자에게 자신의 삶인 비밀, 폐쇄된 내면성이라는 어떤 엄격하고 사적인 영역으로 고립될 수 있는 울타리를 고집하지 않는 비밀, 그럼에도 타인에 대한 책임을 고수하는 비밀을 정당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이 책임은 그것이 윤리적으로 도래할 때 양도할 수 없는 책임일 터이고, 우리는 이 책임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이 책임은 절대적 개별화의 원리일 것입니다.
1.
'자연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의 개념은 주체성으로 환원되는 감각이다. 그가 자연 발생적이라고 믿는 감각이나 관성적 인식은 전체성으로 쉽게 환원되는 것일 뿐이다. 쉽게 소유하려는 관성, 소비하고 버려지는 상품에 대한 무감각, 자기중심이자 전체로 환원되는 인식은 고착된 틀을 만든다. 비루한 자신을 한편으로는 잊으려 하면서도, 좁은 지평이 무너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말인성은, 시원에서 먼저 물러나 있는 타자성을 모른다. 영원히 달아나는 것으로 아름다움과 완성의 순간 멀어지는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성급하게 소유하려 할 뿐이다.
그는 타자를 살해할 뿐이 아니라, 실상 자신의 살해자다. 동일성으로 시작된 것은 어떤 타인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비루함을 거울을 보듯 재발견 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조급함의 발현일 뿐인, 성급한 이웃사랑은 타자성의 언어를 찾을 수 없는 동일자를 자기 위로한다.
그러나 만남 이후의 존재의 허기는 더욱 옥죄어 올뿐이다. 그가 열정을 더할수록, 관계 이면의 절벽은 더욱 가팔라진다. 자신의 본래적 실존을 찾기 위해서, 절벽에서 손을 놓아야 함에도 결단하지 못한다. 성급함, 조급증의 낮고 협애한 말인성이, 자신을 느리게 살해하기를 사실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인성 너머, 그곳을 향한 사랑은 결코 동일성으로 고착될 수 없다. 평균적 일상성 너머로 사유의 모험, 전적인 낯섦이자,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운 감각일 수 없는 것이다. 조급증 수준의 존재 실력으로는 자신의 그림자에도 놀랄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피투 된 존재로서 실존의 조건에 대한 어떤 언어도 찾지 못한다. 현존재에게 닥쳐오는 작은 헛헛함마저 참아내지 못하기에, 죽음과 마주하는 것은 요원한 사건인 것이다. 하물며 타자화 된 자신이자, 무의식 속의 털북숭이들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2.
'정치는 언제나 윤리에 기초하여 점검받고 비판'받아야 한다는 레비나스의 말은 주체의 인식론적 환원의 구조에서 건축되어 온 사회 체계, 사상사 전반의 경향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네모의 물음은, 두 번째 윤리(타자성으로 비밀이자 신비와 관계)가 기존의 정치나 자연적인 것을 능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절대적으로 비밀이면서도, 열려있는 책임은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다.
"타자로서의 타자는 올려다보아야 할 높이거나, 혹은 실추거나 그 어느 쪽인가의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 타자는 빈자, 이방인, 과부, 고아의 모습을 갖는 동시에 스승의 모습을 가지며 그것이 나에게 자유를 수여하고, 나의 자유를 기초 지우는 것이다." -레비나스
레비나스는 '절대적으로 비밀이면서, 열려있는 책임'으로 '타자의 얼굴'을 내세운다. 주체 앞에 노출된 타자의 얼굴은 '살해당할 운명과 에로스의 운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호모 사케르로 자신의 생명의 비밀이 완연히 드러나버린 얼굴은 주체에게 열려 있는 책임을 요구한다. '살해하지 말라'는 대타자이자, 신성의 요구가 호모 사케르의 피할 수 없는 얼굴에 현현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에로스적 얼굴로서 '얼굴 저편으로, 멀어지는 얼굴'은 자신을 숨긴다. 주체가 너무도 쉽게 인식으로 환원하며 자신의 타자성을 소유하려 하는 것을 중지시키며, 계속 멀어지는 것이다.
타자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것이 나에게 자유를 수여하고, 기초 지움'을 계시받을 때, 레비나스가 언급한 책임은 비로소 윤리적으로 도래한다. 이는 '양도할 수 없는 책임일 터이고, 우리는 달아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이 책임은 절대적 개별화의 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