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것의 저편으로 향하는

윤리와 무한 읽기(35), 레비나스 강독, 2022년 2월 1일

by 김요섭



네모 : [전체성과 무한]에서, 선생님은 얼굴에 관해 길게 이야기합니다. 얼굴은 선생님이 빈번하게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지요. 이 얼굴의 현상학, 곧 내가 타인을 얼굴 대 얼굴로 바라볼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한 분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요?


레비나스 : 현상학은 나타나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굴의 '현상학'이란 것을 말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저에게는 우리가 얼굴을 향해 나의 시선을 돌리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선은 인식, 지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얼굴에 접근하는 것이 곧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코, 눈, 이마, 턱을 보고서 그것들을 기술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어떤 대상을 향하듯이 타인을 향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마주하는 제일 좋은 방식은 타인의 눈동자 색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동자 색을 관찰하고 있다면, 타인과 사회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각은 확실히 얼굴과의 관계를 지배할 수 있지만, 얼굴 특유의 것은 지각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얼굴 자체의 올곧음, 무방비 상태에서 얼굴이 올곧게 노출되는 일이 있습니다. 얼굴의 피부는 가장 벌거벗은 상태, 가장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단정한 벌거벗음이더라도 가장 벌거벗은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가장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얼굴에는 본질적인 빈곤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포즈와 몸가짐을 취함으로써 이러한 빈곤함을 숨기는 가면을 쓴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얼굴은 마치 우리를 폭력 행위에 초대하는 것처럼, 노출되고 위협받습니다. 동시에 얼굴은 우리가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얼굴이 '가장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은 윤리적 사건이다. 주체의 시선 앞에 놓인 타자의 얼굴은 '약함'일 수밖에 없다. 존재자의 처분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는 '호모 사케르'는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얼굴은 어떤 대적하는 감정이나 반대하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본질적인 빈곤함'으로 주체 앞에 노출되어 있는 텅 빈 것이다. 빈곤은 '온유'이며, 그에게 시원적 사건을 일깨우는 근원적 비어있음으로 '일리아'이다.


주체는 타자와의 불평등성으로부터 근원적 비어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자신보다 먼저 물러나서 그의 거주를 가능케 했던 타자의 부재. 어떤 대가도, 어떤 행동도 요구함 없이 그에게 향해있는 신성의 현현. 주체 앞에 온전히 내맡겨진, 날것으로서의 생명을 통해 자신의 원초적 가해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는 비로소 '비어있음'과 함께, 어떤 강요나 의무도 아닌, 시원적 사랑에 다가간다.



2.

근원적 윤리이자 불평등의 시차를 통해, 타자의 얼굴은 '사랑'의 덮개로 가려진다. 호모 사케르로 그 앞에 있던 가장 낮은 자의 얼굴이, 왕의 위엄과 아름다움의 옷을 입는다. 지극한 사랑은 단 한 번도 도래한 적 없는 모습으로 현현한다. 모든 영광과 진리는, 주체성을 폐위하며 동시에 신성의 휘장이자 찬란한 광휘로 그를 감싸 안는다.


비로소 주체는 그분의 얼굴과 함께, 그곳으로 향할 수 있다. 곡진한 아름다움 속에 그의 얼굴은 새하얀 광채로 빛난다. 이 빛은 그의 이성이자 주체성 속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저 멀리 무한에서 도래한 신성이자 지극히 높은 분의 빛이다.



3.

타자의 얼굴로서 '무방비는 기습할 수 없고', 그녀의 '노출된 얼굴은 숨겨져'있다. 주체에게 시원으로부터 물러나 있는 비의미, 비존재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녀의 '온유함'이다. 비로소 그는 '의미 없는 의미'까지 물러설 수 있다.


시원으로부터 자신의 정주를 포기한 적 없던 이가, 일리아의 '그저 있음'까지 물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존재 사건이다. '아브라함처럼 일가친척 모두를 떠나 그분이 명한 곳으로 가게 하는' 존재 사건은 그분의 얼굴을 마주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는 '얼굴의 저편' 안의 주체로서 '무방비, 노출'이자, '의미하지 않음'으로의 물러남이며, 동시에 다가서는 일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파악하지 않는다. 사랑은 개념에 도달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것에도 도달하지 않는다. 사랑은 주체-대상, 나-당신이라는 구조를 갖지 않는다. 대상을 고정하는 주체로도, 가능한 것을 향한 기투로도, 에로스는 성취되지 않는다. 에로스의 운동이란, 가능한 것의 저편으로 향하는 일인 것이다." - 엠마뉴엘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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