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앤 미세스 아델만(2017), 니콜라스 베도스 감독, 영화 읽기
유명 작가인 남편(빅터)을 떠나보낸 아내(사라)에게 전기 작가가 찾아온다. 그녀의 회고를 통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명작가였던 빅터를 첫눈에 사랑한, 그녀의 인생을 따라가는 작품은 액자식 구성이다.
영화 초입, 사라는 '남편을 죽인 아내라고 써야 책이 잘 팔릴 것'이라는 의뭉스러운 말을 한다. 이는 관객이 결말을 쉽게 유추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다. 그녀가 고인의 책상에 담배를 비벼 끄는 행동이나, 전기 작가를 대하는 거침없는 태도를 통해 관객의 선입견을 만드는 것이다.
이로써 결말에서 드러날, 빅터 아델만의 거의 모든 작품은 사라의 창작이며, 그녀가 무명작가를 아카데미 프랑세즈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라는 진실이 숨겨진다. 감독은 마지막 반전을 위한 간단한 장치를 도입부에 깔아놓음으로써 이야기를 감추는 일에 성공하는 것이다.
전기 작가는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청한다. 사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와의 평생의 에로스적 관계에서 언어의 '관능'으로 엮여있었던 비밀에 빛을 밝히는 순간, 사랑은 끝나버린다는 진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먼저 물러나 있는 타자성이자, 그의 정주함을 구축해 준 여성성으로 둘의 관계는 수수께끼이자 비밀로 남아야 한다. 제3자의 등장은 둘만의 관능으로서의 '닫힘, 친밀성, 비공공성'을 까발리는 것일 뿐이며, 에로스의 종말이다.
에로스는 명증과 이해, 폭로 속에는 머물 수 없으며 영원히 달아날 수밖에 없다. 오직 부재하는 것과의 관계이며, 어떤 '타동사적 작용'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 연인의 사랑인 것이다.
이는 '타자의 부재와의 관계'이며 동시에 '주체의 부재와의 관계'이기도 한 '관능'이다. 끝 간 데 없는 욕망이며, 오직 둘 사이의 비밀이자, 최상의 에로스의 형식이다.
빅터를 향한 사라의 에로스는 얼굴 저편의 얼굴이다. 먼저 사랑하며, 상처받고, 그의 외면과 부정에도 그를 향해있다. 물러나 있는 타자이자, 존재론적 여성성으로 기다리며, 동시에 다가간다.
그가 그녀 안에 있고, 그녀가 그 안에 있는 순간의 지속. 적극적 수동성이자 물러나며 다가섬은 인생에 걸친 사랑의 형식이자, 순간에 머무르는 아름다움을 지속하기 위한 '비밀'인 것이다. 비로소 언어의 수수께끼이자, 창작의 신비로서 타자성은 훼손됨 없이 관객을 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