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쿠(남편)와 오토(아내)는 에로스 언어로 엮여 있다. 드라마 작가인 오토는 관능의 순간 떠오른 착상을 남편에게 속삭이고, 가후쿠는 다음날 자동차 안에서 이야기를 다시 전해준다. 관능적 대화를 통해 서로 섭입(攝入)하는 둘의 관계는 특별해 보이지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작가인 그녀가 드라마 주인공 남성과 혼외관계를 맺는 것을 가후쿠는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연극제 출장이 취소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회피할 뿐이다.
가후쿠는 본 것으로 이해하고, 둘의 관계를 결론짓는다. 진실을 말하면 관계는 깨질 것이라 속단하며, 터놓고 대화하는 결단을 하지 못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이라 스스로 납득시키지만, 이는 자신의 전체성이자 동일성이 깨지지 않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로써 그의 명증적 이해 바깥에 있는 아내의 숨겨진 욕망, 결코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에는 가닿지 못한다. 자아 속의 타자화된 진실을 외면하는 그에게, 타인의 타자성은 공명될 수 없는 것이다. 관조적 이해는어둠 속 진실에 결코 다가가지 못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 뿐이다.
소유될 수 없는 것, 비어있음
두 사람의 언어적 에로스는 사실 비어있다. 어린 딸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는 말 못 할 상처로 이어진다. 에로스가 육체적 '자식성'으로 향하지 못하기에 비틀린 것은 서로의 관심을 엇갈리게 만든다.
오토의 관능은 가후쿠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언어에 있다. 가후쿠의 관능 역시 아내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가깝다. 소유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봄(vision)'의 형식은 결코 타자성에 가닿지 못하며 표면적 에로티즘에 머무는 것이다.
이는 가후쿠가 목격한 그녀의 불륜의 상대에게, 자신에게 이야기하다가 멈춘 드라마 후반부의 착상을 말한 것과 관련 있다. 둘 만의 관능에 침입한 적 없던, 제3자의 개입은 항상 미끄러져 내린 에로스적 관계를 완전히 파탄내고 만다.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
어느 날, 아내는 가후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는 절대적 타자성으로 느닷없이 도래한 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명증적 이해가 불가능한 것을 참을 수 없는 동일성은 귀환하지 못한다. 깊은 심연을 감내할 수 없는 전체성은 존재 사건을 회피하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그는 아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만다. 도피된 거짓의 결과는 에로스의 종말이자, 타자의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진실의 언어는 결국 노래의 날개를 꺾인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협애한 '시선'속에 재단된 파편적 실체만 남았을 뿐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참된 실제에 가닿을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된 나르시스적 주체는 자기 동일성 속에 갇힌다. 언제나 '진리는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지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