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3)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지배 없는 전체성


다른 언어는 다른 전체성이다. 가후쿠의 다중언어 연출은 성별과 연령 차이는 물론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인물이 있음에도 공명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아름다움은 '각자는 다르지만 하나이며, 동일하지만 여전히 다른 단독성'으로 현현한다. 그는 자기 동일자를 '그곳을 위한 존재'로 바꾸는 '지배 없는 전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타자성에 균열이 난 주체가 지향할 수 있는 그곳은, 너무도 확실하지만 너무도 모호한 장소이다.



그러나, 가후쿠의 사랑은 에로스적 장소를 지향하지 못했다. 함께 그곳을 지향하는 확실함에는 모호성이 빠질 수 없지만, 그는 놓지 않으려고만 했기에 실패하고 만다. 언뜻 그의 수동성은 지배와 거리가 먼 듯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대화를 회피하는 부작위를 통해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유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 했기에, 결국 나르시스적 전체성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만다. 가후쿠의 에로스는 확실성을 원하는 미끄러짐이며, 관계를 사로잡고자 한 불가능한 시도일 뿐이다.




죽음의 선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영화 대사를 깨닫지 못했던 것은 가후쿠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내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처럼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해결될 수 없는 불안이자, 동일성에 메임이다. 나르시스적 주체는 타자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면의 타자화된 자신과의 직면도 불가능할 뿐이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전체성을 원했기에 역설적으로 전체성에 다가가지 못한다. 자기 위로로 환원된 사랑은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된다. 초재성이자 편재성인 그곳은 영원 같은 순간만 도착할 수 있는 헤테로토피아인 것을, 안타깝게도 그는 알지 못한다. 축제의 순간,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주체는, 연극이 끝난 후의 서늘함을 모른다. 봄날이 가고 난 뒤, 사나운 진실을 살아내지 못하는 파편적 전체성에, 에로스는 죽음을 선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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