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4)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지배하는 전체성


가후쿠의 연극에서 달성되는 아름다움은 실제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출 방식이기도 하다. 감독은 배우들과 둘러앉아 대본 리딩을 시작한다. 그는 대사에 감정을 싣지 않도록 요구하며, 서로의 목소리와 대사 전체를 모두가 이해할 때까지 수십 번을 반복한다. 무미건조한 읽기의 강요는 분명 독단적이며 폭력일 수 있다.


그러나 언뜻 차이 없는 반복을 통해 그가 지향하는 것은 명확하다. 4개 국어(가후쿠의 다중언어 연출 방식)가 상징하는 완전히 다른 전체성을 한계 지점까지 내모는 것이다. 이는 다름의 끝단에서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 아니라, 동일성을 요구하며 살해하는 전체성의 고삐를 잡아당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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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과 초월


'이해란 나아갈 방법을 아는 것(비트겐슈타인)'이기에 무감한 반복의 종착지는, 타인의 피를 이해하는 일이다. 가후쿠 연극처럼, 결국 우리는 다른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는 전체성이기에, 대본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과정은 자기 동일성의 경계로 나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명증적 이해의 끝에서 마주하는 철저한 자기 인식이며, 타자로 건너가는 초월의 가능성이다.


동일자가 동일성의 끝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손쉽게 타자를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전쟁을 치르게 하는 일이다. 감독의 독단적 폭력이 지향하는 것은, 배우가 자신의 전체성을 주장하는 독백이 아니라, 극의 아름다움 속에 단독성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에로스의 형식인 것이다.


야생말을 길들이는 훈련을 통해, 그는 서로의 다른 전체성이 합일할 수 있는 장소 없는 시간을 맞이하고자 한다. 이는 지배하는 전체성을 통해, 지배 없는 전체성을 향하는 일이다. 지극히 높은 아름다움을 깊은 일상성으로 도래시키는 축복이며, 지금 여기에 무엇보다 강도 있게 발 딛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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