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6)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과의 관계


파토스는 낯선 손님으로 다가온다. 완전한 낯섦은 촬영의 순간 느닷없이 도착했다. 코기토의 빛 안에서만 말하고, 인식의 범주로 포획하던 일에 완연한 균열이 찾아온 것이다. 명증적으로 이해된 상황이, 이미 안다고 생각한 언어가 돌연 무화된다. 이해됨 없는 이해, 비언어가 부재한 것은 결코 이해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재활용 공장의 흩날리는 재의 아름다움, 가후쿠와 미사키가 함께 피우는 담배의 위로, 연극에서 소냐가 바냐 아저씨(가후쿠)를 안아주는 장면을 통해 작은 빛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고,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은 계속될 것이며, 그는 또 부서질 것임이 분명함에도. 그 빛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에 닫힌 주체성에게 유일무이한 가능성이다. 존재를 짓이겨버리는 재앙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희망 없는 희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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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 속의 주체


자기 동일적 주체로는 납득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는 사건. 비존재 속에 도래해 있는 '비어 있음'을 서늘하게 감각하는 것. 오직 비언어와 무의식을 그 자체로 받드는 일밖에 없는. 거칠고 억센 것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감'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리아(il y a)적 '비어 있음'이 차가운 재앙만은 아니다. 무화된 주체성이자, 텅 빈 비동일성에 비로소 절대적 타자성은 도래할 수 있기에. 완고한 주체성에 선고된 죽음은 사나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서로의 텅 빈 하늘이 공명하는 '장소 없는 장소'. 잠시 도착한 그분의 포월하는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무의미에 허덕이는 주체를 향한, 구원의 순간마저 없지 않은 것이기에.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지 않은 것이다.' -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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