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읽기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과의 관계
영화는 재활용 공장의 흩날리는 재의 아름다움, 가후쿠와 미사키가 함께 피우는 담배의 위로, 연극에서 소냐가 바냐 아저씨(가후쿠)를 안아주는 장면을 통해 작은 빛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고,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은 계속될 것이며, 그는 또 부서질 것임이 분명함에도. 그 빛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에 닫힌 주체성에게 유일무이한 가능성이다. 존재를 짓이겨버리는 재앙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희망 없는 희망'인 것이다.
일리아 속의 주체
자기 동일적 주체로는 납득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는 사건. 비존재 속에 도래해 있는 '비어 있음'을 서늘하게 감각하는 것. 오직 비언어와 무의식을 그 자체로 받드는 일밖에 없는. 거칠고 억센 것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감'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리아(il y a)적 '비어 있음'이 차가운 재앙만은 아니다. 무화된 주체성이자, 텅 빈 비동일성에 비로소 절대적 타자성은 도래할 수 있기에. 완고한 주체성에 선고된 죽음은 사나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서로의 텅 빈 하늘이 공명하는 '장소 없는 장소'. 잠시 도착한 그분의 포월하는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무의미에 허덕이는 주체를 향한, 구원의 순간마저 없지 않은 것이기에.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지 않은 것이다.' - 루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