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7)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타자의 얼굴


하마구치 감독의 연출은 존재론적 여성성으로 다가간다. 무미건조한 대본 읽기의 반복, 촬영 현장에서 처음 감정을 싣는 방식은 새로운 주체를 출현하게 한다. 이해된 것에서 적당히 변주하는 전체성이 아닌, 불가해함 속에 머무는 주체로 변신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들이 함께 아름다움을 향하는 순간 절대적으로 낯선 얼굴이 도착한다. 알고 있던 얼굴이 아닌, 대본에 없던 물선 파토스가 그들 사이에 현현한다. 가장 낮은 자의 얼굴은, 가장 높음을 입는다. 이해된 것이,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물러나며, 그에게 전언한다.


'살해하지 말라'


이는 분명 바깥에서 온 것이나, '너는 해야만 한다'는 '용의 명령'(니체)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동일성에 갇힌 '낙타'를 향해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다. 정처 없이 광야를 헤매던 이에게 찾아온 오아시스이자, 존재의 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를 탈출시키는 유일한 가능성이자 초월인 것이다.




지배하지 않는 금기


헤테로토피아는 '지배하지 않는 금기'이며, '실현됨 없이 실현'되는 욕망이다. 살해하지 않는 주체성은 고독 속에 머무르나 결코 외롭지 않다.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품은 존재론적 여성성으로, 그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이는 진리 사건이자, 영원히 멀어지는 것과의 관계함이다.


그러나 상징계를 찢고 들어온 재앙의 아름다움은 단절적이다. 완성의 순간, 사라져 버리는 그곳은 주체의 정주(定住) 성으로는 다가갈 수 없다. '일가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명하는 그곳으로 가라'라고 계시받은 단독성이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빛이자, 극단적 지향성이다. 이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의 현상이자, 그 속에 머무르고자 하는 주체의 관능인 것이다.


전체성과 무한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처음 감정을 싣게 될 때 오는 낯섦. 완고한 전체성에 비로소 도래한 낯선 타자성. 공명의 순간, 서로 다른 전체성은 주먹질을 멈춘다. 느닷없이 도착한 타자성을 기다린 계시받은 주체성은 본래적 실존을 찾는다. 순간, 알고 있는 것과 예상치 못한 것이 연결된다. 유한성과 불가해한 신비가 맞닿으며,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순환한다.


너무도 확실함과 너무도 모호한 것이 모순없이 연합한다. 다 이해되지 못한 것 속에서 이해받는 주체성으로의 변신은 존재 사건이다. 타인 자의 낯섦을 향유하는 호모 루덴스가 아닌, 타자로 건너가는 모험은 주체의 죽음이다. 이는 전체성의 정주 속에 어떤 구원도 기대할 수 없던 이가 목도하는 절대적 타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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