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그곳을 지시한다

원 세컨드(2020), 장 예모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1초


남자는 사막을 건넌다. 그가 탈옥한 이유는 열네 살 된 딸이 나오는 중화 뉴스를 보기 위해서다. 목숨을 걸고 탈옥하여 어느 마을 영화 상영소에 도착한 그는 여자(류가녀) 아이가 필름통을 훔치는 것을 목격한다. 그녀를 쫓아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남자는 영화의 제목처럼 1초밖에 나오지 않는, 딸을 보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을 감내한다. 두드려 맞기도 하고, 사막에서 탈수 증세로 죽을 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겪는 어려움에 비해 허락된 시간은 너무도 짧다. 실제 딸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가상의 1초를 위해 그는 왜 목숨을 걸었는가?




영화는 필름을 지시한다


'필름'은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 각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향하는 지점이다. 등장인물과 사건 모두 그것을 향한 강한 애착을 보인다.


필름통을 훔친 류가녀는 부모를 잃고 어린 동생과 살고 있다. 필름으로 만든 전등갓을 남동생이 실수로 태워버리는 바람에 동네 아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해 필름이 꼭 필요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애정 역시 각별하다. 두 달에 한번 영화가 상영되는 날은 축제의 시간이다. 그들은 낮부터 다른 일을 멈추고, 필름이 배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앞자리에 앉기 위해 영화기사에게 해바라기 씨를 찔러주기도 하는 등, 영화상영은 그들에게 특별한 사건인 것이다.



특히, 배송기사의 실수로 필름이 바닥에 풀어진 채 도착된 것을 수습하는 시퀀스는 특별하다. 장예모 감독이 영화에 바치는 최고의 헌사에 다름 아니다.



혹시라도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마음 졸이는 마을 주민 모두가 이에 참여한다. 우선 먼지가 묻어 상처 입은 필름을 담요 위로 고이 펼친다. 8명이 그것을 맞잡고, 강당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왕을 모신 행차 같기도 하다. 잔치를 벌이듯 밖에서는 가마에 불을 올린다. 흙먼지가 묻은 필름을 닦아 낼 증류수를 준비하는 것이다.


건조한 사막의 어느 마을, 어떤 문화적 혜택도 없는 장소에 영화는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이다. 그들은 오직 영화를 위해, 사막에서 무엇보다 귀한 물을 바친다. 힘든 노동과 일상의 고단함을 잊는 장소 없는 시간성이자, 상징계의 부조리를 넘어서는 주이상스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는 것이다.

정제수로 필름을 하나하나 세척해나가는 컷은 가히 아름답다. 흰 천으로 고인의 몸을 만지듯 정성스럽게 닦아 내는 장면은 영화를 향한 곡진한 정성이자 찬미에 다름 아니다.



영화 기사 역시 자신의 직업으로서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전 과정에 개입하는 장인 정신과 그의 권력 지향적 행동은 이중적이나 모순되지 않는다. '지배하는 전체성'이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곳을 향해,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각자의 부족함과 물리적 어려움에도 영화는 마침내 시작된다. 8번을 봤다는 류가녀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마을 사람들은 '영웅아녀'라는 이념적 영화를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러나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는 그들의 눈빛을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초인'은 다름 아닌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얼굴이다. 창문에 매달리고, 스크린 뒤까지 점령해 옹기종기 앉아서 영화를 보는 이들의 지향성은 그곳을 향한 아름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루만지는 사랑이며, 장소 없는 시간성인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