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9)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바냐 아저씨 대본(마지막 장면)


소냐 : 하지만 살아가기로 해요. 바냐 삼촌, 우리 살아요. 운명이 우리에게 준 시련을 끈기 있게 참고, 지금이나 나이를 먹은 후나, 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기로 해요. 결국 우리의 시간이 다가오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해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우리는 지금의 불행을 회상하면서 쉬게 될 거예요. 난 믿어요. 삼촌, 열심히, 진심으로 믿고 있어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머리를 기댄 채, 지친 목소리로)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쩰레긴, 조용히 기타를 친다.


소냐 :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난 믿어요, 믿어요.... 그때 천사의 소리가 들리며,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이 하나님의 커다란 사랑 안에 흡수되어 버릴 거예요. (그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불쌍한, 불쌍한 바냐 삼촌. 울고 계시는군요... (눈물을 글썽이며) 삼촌은 평생 기쁨을 모르고 사셨지만, 이제 조금 남았어요, 바냐 삼촌.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 쩰레긴은 조용히 기타를 치고, 마리야 바실리예브나는 팸플릿의 여백에 뭔가 쓰고 있고, 마리나는 양말을 뜬다.


소냐 :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대본에 응답하면, 그 빛이 무엇인지 알게 돼."


50번을 반복하는 대본 리딩은 지독한 확실성이나 동시에 서늘한 모호성이다. 인식의 명증성 아래 포획되지 않은 단어가 없는 듯한 상황은 고통스럽다. 차이 없는 반복은 지독한 자기 동일성의 경험이다. 그러나, 어떤 새로움도 없는 얕은 일상성에 허덕일 때, 타자성은 장소 없는 장소를 엿볼 수 있다.


'대본에 응답함'으로 시작되는 주체성은, 바깥을 향한다. 단 한 번도 없던 순간이 무미건조한 읽기를 찢고 느닷없이 다가온다. 다카즈키의 물음에 응답한 가후쿠의 '빛'은 전체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멀리서 도착한 '그 빛'은 '타자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신성(神聖)은 다른 사람을 향한 희생과 책임'이라는 레비나스의 말에 응답한다. 유책성의 시차에서 시작된 에로스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비로소 그들 사이에 생성된 작은 빛은 마지막 남은 전체성을 호명한다. 비어있는 주체성은 이미 타자성 안에 있으며, 그의 열림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어떤 위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공명이다. 오직 그분이 도래할 때, 모든 억압을 박차고 나오는 불가능의 형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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