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보스(2021),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 영화 읽기
가족 같은 회사
블랑코(하비에르 바르뎀)는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다는 듯이 살아간다. 그는 저울을 만드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표면적으로는 굿 보스인 것처럼 보인다. 가족 같은 회사를 내세우며, 직원들을 아들 딸처럼 돌본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나, 첫 장면에서 블랑코의 연설 도중, 정리해고된 이의 난입은 그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그가 말하는 가족주의는 오직 저울질의 범주 안에 있을 때뿐이다. 계산이 틀어지거나, 측정할 수 없게 되면, 오랜 친구도 약점을 잡아 잘라내 버린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양화 되고, 교환될 수 있는 확실성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꼼꼼함과 정확성이 작동하지 않는 지점도 있다. 오직 블랑코 자신에게만 정의의 여신은 무지의 베일을 쓰지 않는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 저울은 기울어진 채, 체제의 정점에 있는 이에게는 작동하지 못한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회사 정문에 있는 저울과 관련한 시퀀스이다. 블랑코가 드나들 때마다 확인하는 저울은 항상 기울어져 있다. 그의 명령으로 관리인이 닦고 수리도 해보지만, 고장 난 저울은 고쳐지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 회사 평가를 위해 감독관이 방문할 시간이 다가오자, 블랑코는 직접 해결에 나선다.
수위에게 총알을 달라고 하고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 아래 그것을 끼워 넣는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맞춘 저울은 드디어 수평이 맞게 된다. 그러나 균형은 '총알'이 상징하는 것처럼, '가족 같은' 직원을 희생시킨 결과 작동하는 기울기인 것이다. 블랑코의 저울은 오직 자신을 향해 기울어져 있기에, 그것을 대리 보충하기 위해 타자의 피가 필요한 것이다.
기울어진 저울과 타인의 피
사내 불륜을 한 오랜 친구의 약점을 잡아 해고해버린 블랑코는 정작 젊은 여직원을 건드린다. 심지어 자신의 오랜 친구의 딸이자, 어릴 때 젖병을 물리기도 했던 릴리아나를 범하기도 한다. 인턴은 조직 내에서 가장 약한 고리이며, 언제든지 잘라낼 수 있기에 그에게 저울에 올려지지도 않는 가벼움인 것이다.
블랑코의 청부로 인해 타인의 피를 직접 흘리게 한 사건도 발생한다. 첫 장면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이가 회사 정문에서 시위를 하기 시작한다. 그를 쫓아내기 위해 시민을 가장해서 경찰에 신고를 해보기도 하지만 공유지이기에 쫓아낼 방법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회사 평가를 앞두고 대외 이미지를 위해 블랑코는 직접 협상에 나선다. 퇴직금을 올려주겠다, 다른 곳에 취업시켜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이미 저울질이 통하지 않는 '비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블랑코가 철저히 무시하고 비인간적으로 대우한 결과, 옛 직원은 아무런 협상도 통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에게 블랑코는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직원(포르투나)의 아들을 사주해서, 청부 폭행을 지시하는 것이다. 정의의 여신의 천칭을 만드는 회사라는 아름다운 광고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과 그가 벌인 극단적 부정의는 무감하게 대비된다.
블랑코는 불타버린 정문 앞 철거 흔적을 커다란 플래카드로 덮어버린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되어야 할 무지의 베일은 오직 약자의 고통을 감추는 덮개로 사용될 뿐이다.
강제 철거 과정에서 포르투나의 막내아들마저 불의한 사고로 죽게 된다. 블랑코는 자신의 청부 행위를 덮기 위해 그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약속하며 무마시킨다. 자식 같다던 직원을 해고하고,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덮기 위해 다른 직원을 악용하며, 결국 그의 아들까지 죽게 되는 과정은 블랙 코미디이나,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우리의 민낯이다.
영화의 부조리
시스템의 부조리는 부정의와 불법을 일삼은 이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유일한 실체이자, '부동의 동자'인 블랑코.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며 다른 이를 대상화하고, 계산하는 전체성은 불사하며 또 다른 전체성으로 대체될 뿐이다. 지배하는 주체성은 타자를 짓밟고 수단화하며, 상품처럼 쓰고 버린다. 부당하게 타인의 피를 대가로 치른 그는, 저울질당하지 않고 정의의 여신의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수준의 결론이 영화의 부조리이기도 하다. 감독은 '성과 주체'로서 약자의 희생은 잘 보여주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점에 있는 블랑코의 어두움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체제의 꼭대기에서 아무리 '부동의 동자'처럼 존재한다고 해도, 그 역시 내면을 가진 한 사람일 뿐이며, 성과 주체이다.
감독이 보여 준 여러 장점과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블랑코에 대한 내면 묘사는 너무 둔탁하다. 뜬금없이 감상에 젖기도 하는 장면 정도로 그치고 만 것은 영화가 다채로운 결을 가지지 못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