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il y a)와의 관계

아사코(Asako I & II, 2018),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by 김요섭



전체성이 포획할 수 없는 이름


'꿈속에서도, 그리고 깨어서도'

'밤낮없이'

'Asako I & II'


상영되는 나라마다 영화 제목이 달랐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사코'로 걸렸다. 안타깝지만 위의 제목들과 비교하면 가장 단선적이며, 나쁜 이름이라 생각한다. 주체성 바깥이자, '그곳'을 말하는 영화를 다시금 동일자의 언어로 포획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빈틈', '균열' 사이로 느닷없이 닥쳐오는 불가해함. 기이하며 해석될 수 없는, 주름의 겹침. 그 미묘한 열림에 들이닥치는 낯섦은 '아사코'라는 전체성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마지막 장면의 무화된 그녀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정말 그랬다면 좋겠지만...), 단지 전형적 멜로물의 제목을 달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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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점으로 영화 전반에 걸친 아사코의 전체성을 따라 붙인 것이라 변명할 수도 있겠으나. 만약 그랬다면 철저히 감독의 주제의식을 오독한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주체와 타자 사이', '도래하는 재앙',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세밀한 언어의 결은 동시에 비언어적이기도 하기에. 명사형의 종결적 단어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성의 언어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타자는 다가가려 할수록 미끄러질 뿐이다.


어쨌든, 영화의 '그곳'은 단일한 언어로 받을 수 있는 낮음이 아니다. 둘의 관계로서 '관능'은 불가해한 것이며, 느닷없음이며, 계속 멀어지는 것이다. 도달할 수 없기에 결코 종결지을 수 없고, 다가갈수록 미끄러질 수밖에 없기에. 그것을 어루만지는 언어이자, 불가능을 애도하는 비언어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은 '아사코'라는 존재자의 현존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변고(變故)이며, 하마구치의 영화는 폴리포니아적 다성성으로 '그곳'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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