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늘하게 있는(2)

나이트메어 앨리(2021),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악의 거친 성장기


스탠턴의 악의 성장기에서 두 번째 아버지인 피트의 살해 과정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심령술의 비법이 적힌, 그의 책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피트는 '비법을 잘 못 다루면 가까운 사람들이 다친다'라고 말하며, 그가 몰래 훔쳐볼 때마다 거리를 둔다. 그러나, 금기된 욕망은 결국 스탠턴으로 하여금 부친 살해로 이르게 만든다. 영화 첫 장면에서 암시하듯 이미 친부를 살해한 이후의 여정이기에, 또 다른 살인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피트로부터 더 배울 게 없다고 느껴질 무렵, 스탠턴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용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는, 그의 술 심부름에 클렘의 창고로 향한다. 태아의 유리병으로 둘러싸인 그곳('에녹'의 상징, 친족 살해)에는 왼쪽은 수수 발효주가, 오른쪽은 메틸알코올이 놓여 있다. 클렘의 설명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그가 술을 꺼내 드는 위치는 오른쪽이다.


다음날 피트의 죽음이 서커스단 전체에 퍼지고, 모두가 애도할 때 스탠턴은 다급히 뛰어간다. 비법서를 챙긴 그는 서커스의 헤로인인 '몰리'를 데리고 뉴욕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성공을 향한 터닝 포인트에 또 다른 죽음을 대가로 치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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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세련된 변주


남성적 악의 상징인 '클렘'은, 스탠턴의 장소 이동과 함께 '릴리스'로 변주된다. 클렘이 도시 외곽의 거칠고 노골적인 형태의 악마라면,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는 부드러운 여성성으로 현현한다. 그녀는 뉴욕 중심가의 심리학자의 옷을 입고 있으며, 지성과 특유의 매력을 겸비한 고혹적인 모습이다. 상류층의 내면과 약점까지 모두 알고 있으며, 누군가를 파멸로 이르게 할 힘을 가진 그녀는, 베일에 싸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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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턴이 재능을 이용하는 방식 역시, 악마성의 변주와 함께 달라진다. 클렘과 함께 서커스단에 있을 때 그는 '알코올'을 이용했다. 클렘의 무기인 그것은, 태아의 시체를 보관하기도 하고, 부랑자를 중독시켜서 좀비처럼 부리는 악마적 수단으로 물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뉴욕으로 장소가 바뀐 이후, 클렘은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릴리스라는 여성성으로 변신한 그는, 무의식을 조종하는 강력한 악으로 모습을 바꿨을 뿐이다. 형태가 달라졌기에 악의 방식 역시 달라졌다. 물질성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알코올이, 무의식이자 심리적인 것으로 치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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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거래


스탠턴이 상대방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통시적 시간성'의 파편을 읽어내는 재능이 있다면, 릴리스 역시 심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는 더 큰 성공을 욕망하며, 뉴욕 상류층을 공략하기 위해 그녀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막대한 부와 지성을 겸비한 이를 속이기 위해서는, 일반인을 상대하는 수준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스탠턴은 은밀한 동업 제안을 위해, 제 발로 그녀를 찾는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의지만이 아니며,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릴리스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이자 재앙성은, 타자의 피를 원하는 악의 본성의 발현이자, 숨겨진 유혹이다. 스탠턴이 성공을 위해 타인의 피를 대가로 치렀듯, 릴리스는 순수한 악의 현현으로 인간의 피가 필요할 뿐이다.


스탠턴은 유출되면 안 되는 그녀의 상담 기록을 엿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얻은 정보로, 성공에 다가서는 듯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다. 스탠턴은 '당신은 나처럼 악해요'라고 말하며, 그녀의 매력에 점점 이끌린다. 상징계에서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거짓을 온전히 내놓을 수 있기에. 그는 자신의 동일성이자 타자성인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스탠턴은 릴리스라는 복수적 단수이자, 다양체에게 점점 더 의존한다. 개인 상담을 통해 자신의 비밀을 열어젖히고, 상류층으로부터 얻은 현금을 모두 그녀의 금고에 맡긴다. 그에게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몰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본래적 실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동시에 자신과 같은 '기인'이자, 잃어버린 모성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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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미, 스탠턴은 쫓기는 과정에서 그녀의 사무실로 피신한다. 엄마에게 맡긴 돈을 찾듯, 그녀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미 판사 부부, 에즈라와 부하의 피까지 본 그녀에게, 스탠턴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을 뿐이다. '너는 돈 밖에 모르는 저질이야'라는 말로, 단순함이 상대할 수 없는, 깊고 복잡한 악의 형태를 드러낸다.


평범한 악의 순진성이 결코 상대할 수 없는, 깊은 심연에 감추인 근원적 악의 형태로서 릴리스. 그녀는 인지되지 않으며 파악하고, 드러나지 않음으로 지배한다. 이는 부정성으로서 우리의 무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무의식적 살해자로 카인의 후예이며, 욕망의 부정성을 안고 사는 존재'인 인간의 심연.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초재성을 상징하는 것이 릴리스이다. 영화 속의 그녀는 어쩌면,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뉴욕의 상류층을 주무르고 있지 않을까? 인류의 오랜 친구인 릴리스는 '비인칭적 있음'으로, 지금도 70억의 인간의 내면 어딘가 편재하고 있는 서늘한 '일리아(il y a)'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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