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주체성의 장소 없는 장소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2019), 윌리엄 니콜슨 감독, 영화 읽기

by 김요섭



전혀 다른 전체성으로의 관계


영국 남부의 해안 절벽의 이름이 영화의 원제이다. 감독이 로케이션 과정에서 장소를 찾는데 고심했다고 하는데, 그가 담고자 하는 것과 실제 지명이 같음에, 큰 희열을 느꼈을 것 같다.


'Hope Gap'


지명과 장소성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각자성으로 삶의 관성과 욕망이 다르다는 것. 그 불일치로서 차이는 29년을 살았더라 하더라도, 깎아지른 절벽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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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다름이자 전체성인 '해안절벽'은, 항상 타자적인 것으로부터 침식당하기도 한다. 영화 스틸컷에도 보이듯, 코끼리 바위는 언제인지 알 수는 없으나, 파도에 의해 시스텍으로 분리될 것이다. 흰 절벽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은, 그것의 일부임에도 계속해서 멀어져 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절벽과 바다가 있는 한, 영원회귀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사진에 군데군데 보이는 해식동굴은 또 다른 코끼리 바위를 만들 것이고, 거친 절벽의 표면, 바닥에 누런 이끼들 역시 전체성이 항상 마주할 수밖에 없는 타자성과의 관계이다. 이는 어떤 주체성도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단지 자신의 아집이자 관성이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라는 진실을 'Hope gap'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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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하는 전체성


그레이스(아네트 베닝)는 '전쟁하는 전체성'이다. 29년의 결혼 생활에서 '빠져있다'라고 느끼는 것을 남편에게 요구하며, 거칠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상징계 안에서 유한자의 언어로 '요구'하는, 일방적인 '욕구'는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상상계 속의 엄마와 같은 아가페적인 사랑은 그곳에서 부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여분이 남고,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요구와 욕구가 딱 달라붙은 순간은 오직 실재계에서 찢고 들어오는 낯선 가능성이자, 무아경의 순간뿐이다. 그레이스가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영화에서 그녀가 항상 욕구불만인 까칠한 소녀처럼, 집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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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해"

- 드라이브 마이 카 中 가후쿠의 대사


타자의 고통에 무감한 그녀의 낭만적 소녀 감성은 제대로 상처받지 못했다. 남편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자신의 욕구에만 당당한 그레이스는 지배하는 전체성이자 노골적인 폭력성이다. 이는 결코 지배 없는 전체성으로서의 '초월'에 가닿지 못한다. 자신이 막연히 동경해마지 않는 '그곳'은 그러한 관성으로 절대 허락될 수 없는 장소임을 그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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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의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시를 낭송하고, 편집하기도 하는 그녀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안다는 점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과의 관계를 '적당히 알기에' 그녀는 정말 멀어지는 것과의 관계를 오독한다.


시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실제 생활의 불일치는 전체성의 '지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그녀는 모른다. 나이브한 소녀 감성과 낭만 팔이 앞에 현실의 부조리와 타자의 고통은 배제될 뿐이다. 자신만의 지향성(무한이 배제된)이자 그곳을 위해, 남편의 뺨을 후려치며 식탁을 뒤엎는 그레이스. 그녀의 독단성이자 존재와 분리된 인식 앞에, 발가벗겨진 타인 자는 고통을 호소할 뿐이다.


타인을 대상화하고, 수단으로 전락시키면서 사랑 없는 사랑 타령을 갈구하는 폭력적 무능. 그것이 그녀의 민낯이며, 아름다움의 탈을 쓴 지배성이자 권력욕인 것이다. 결국 질려버린 남편이 떠나버렸음에도, 안타깝게도 그녀는 제대로 상처받지 못한다. 텅 빈 주체성으로 잠시 무화되었다가 다시 자기 동일자로 귀환하며, 집착적으로 지배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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