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될 수 없는 것을 향해

피그(Pig, 2021),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by 김요섭



환대를 위한 요리 vs 교환을 위한 수단


영화는 세 챕터로 구분되는데, 그 중심에 요리가 있다. 각각은 서로 다른 음식이나,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접시라면,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포틀랜드의 비싼 레스토랑은 '해체주의'라는 이름의 요리를 한다. 철학의 한 구절을 떼어내어 그럴싸한 스토리를 만들고, 명상 음악과 연결되는 경험은 매끄럽다. 음식은 뿌연 안개를 흩날리며 서빙된다.

언뜻 마술 같은 시간이 제공되는 듯 하지만, 파인 다이닝이라 칭송되는 그것에, '결정적인 것이 부재'한다. 낯섦과 허위로 가릴 수 없는 진짜는, 단순하지만 오래된 진실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은 돈으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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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도시에는 음식이 사라지고, 산업만 남았다. 사랑을 상실한 시대, 화폐로 측정된 가격이 있을 뿐 환대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요리, 공허한 기교를 숨기기 위해 제공되는 가짜 경험.


그들은 오직 교환되는 것만 교환하는 유한성에 머무를 뿐이다. 어떤 초월도, 탈출의 가능성도 상실한 말인성에 질려버린,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오리건 숲으로 은둔하지 않았을까? 최고의 세프로서의 명성과 이름마저 버린 이유를 영화는 명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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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조품은 잔혹한 진실의 흔적이기도 하다.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곳곳에서 잘라낸 살해의 부산물이자, 타자의 파편이라는 점에서다. 진리를 향한 언어를 싸구려 인문학으로 만들고, 타자의 얼굴이자 '살해하지 말라'라는 요구를 무감하게 분쇄하는 살생 기계.

온통 거짓과 위선인 '프로세스'에 의해 잔인하게 '해체되는'(두 번째 음식은 분자 요리이다)것은 다름 아닌 생명이자, 약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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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와 교환의 프로세스


비싼 가격에 팔리는 접시를 위해 '롭의 돼지'는 납치당한다. 누군가에게는 결코 팔릴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진실은 산업의 논리에 무력화된다. 트러플을 찾을 수 있는 돼지는 파인 다이닝의 중요한 도구이자, 황금알을 낳는 닭이다. 착취와 교환이 프로세스의 핵심이듯, 오리건 숲의 고요한 가정을 찢어 발기는 무도한 폭력은 시스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든 것이 교환되는 시스템 안에 타자성은 철저히 파괴된 채 전체성에게 섭취되고 마는 것이다.


롭이 자신이 주방장으로 있었던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아왔을 때도 그들은 진실을 은폐할 뿐이다. '나의 돼지가 어디 있냐는' 롭의 말에 자신의 밑에서 일하기도 했던, 현직 주방장은 요리 산업을 위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찾으러 온 그의 말에 '비즈니스, 식재료의 중요성' 같은 무감하고 잔인한 언어만 내뱉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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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성의 시차


지배하는 전체성에게 '돼지'는 결코 타자일 수 없다. 대체가능한 상품이자 섭취의 대상으로 식재료일 뿐이다. 그러나 납치하고 교환하며, 흡수하는 주체성은 결코 알지 못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을. 돼지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수 있고, 오리건 숲에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롭은 자신의 불가능한 여정을 통해 사나운 부조리와 마주한다. 호모 사케르의 약함은 철저히 난도질 당하고 유린된다는 것을. 그러나 이는 서늘한 진실이기는 하나 감당하지 못할 운명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타자에게 볼모로 잡힌 주체성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낯선 얼굴이자, 유책성의 시차에서 발생한 사랑안에 비로소 머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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