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편 '에드(빌 나이)'는 떠나버렸다. 29년간 결혼 생활은 비의미로 향하며, 그레이스는 텅 빈 존재가 된다.물러나 있는 타자를 알지 못하는 인식은 나아갈 방법을 모른다. 타동사적 존재의 목적어이자, 비존재적 있음을 감각하지 못하는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할 뿐이다. 현관문 옆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가도, 아들 '제이미(조시 오코너)'에게 남편을 데려오라며 발악하기도 한다. 존재의 의미를 찾을 길 없는 혼돈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그러나 주체에게 찾아온 재앙이 반드시 고통과 부정성만은 아니다. 카오스의 경험은 지배하는 관성에서 물러남이며, 자기 동일성으로부터 탈출이기에, 재앙은 아름다움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레이스에게 일리아(il y a)적인 것은 타동사적 의식이자, 균열된 주체로 귀환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이별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지배하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존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입양한 강아지와의 관계에도 드러난다. 남편의 이름인 '에드'로 부르며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보고 흐뭇해한다. 재앙의 도래 이후에도, 훈육하는 대상을 찾는 그녀는 여전히 구제불능의 전체성일 뿐이다.
자기 동일자로 정주함 만을 선택할 때, 바깥으로부터 온 새로운 가능성은 사라져 버린다. 동일자로 돌아왔으나 동일하지 않는 모순은 그녀를 카오스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거주해야 할 장소로서 대상의 상실(남편의 떠남)은 실제와의 분리를 가져온다. 유한자의 틀에 폭력적으로 찾아온 것을 단지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한 결과, 그녀는 자신의 본래적 삶을 되찾을 기회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빠져있는 것
강아지를 훈육하는 그레이스와 결혼생활을 지배하려 했던 그녀는 다르지 않다. 솔직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자신 때문이었다. 그녀가 부재해 있다고 느낀 '어떤 것'은, 자신의 폭력적 지배로 도래할 장소를 찾지 못하는 '약함'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낮음'의 자리로 물러나며, 감정 표현을 자제했기에 결혼 생활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의 29년의 세월에 '빠져있는 것'은 '높음'과 '낮음'의 동시성이자, 역전의 가능성이다. 비어있는 사랑은, 높낮이를 고정시킨 지배하는 전체성 때문이다. 타자의 얼굴에 도래하는 '높음'으로 시차만이 에로스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고착된 지배와 막연한 물러남 사이, 타자성은 도착할 장소를 잃고 만다. 주체의 균열로 잠시 동일성을 상실한 전체성이 성급하게 귀환하며, 틈은 순식간에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