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될 수 없는 것을 향해(2)

피그(Pig, 2021),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by 김요섭



타자성 안의 주체


'다리우스(아담 아르킨)'는 요식업계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이며,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자이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롭(니콜라스 케이지)을 폭행했고, 트러플 돼지를 훔쳐 갔음에도 미안한 기색은커녕, 얼마면 되냐는 식의 폭압적 인간이다. 그러나 롭은 그런 악인 앞에서, 악으로 되갚으려 하지 않는다. 온갖 모멸과 멸시에도 롭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매인 자'이자, 타자성 안의 주체가 되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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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퀀스는 영화 초반, 롭이 숲을 떠난 뒤 처음 벌어지는 사건에도 반복된다. 돼지를 찾아야 하지만 도시의 익명성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도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은둔자인 그는 도시인이 좋아할 만한 교환 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탐낼 유일한 존재는 이미 빼앗긴 트러플 돼지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거래되는 물건일지 모르나, 롭에게는 결코 교환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영화의 대결구도는 드러난다.



평범한 악이 현현하는 장소


그는 오래전 문을 닫은 호텔의 지하 통로를 찾는다. 익숙한 듯 도시를 누비는 롭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는, 그와 트러플을 거래하던 '아미르(알렉스 울프)'이다. 숲의 노인인 줄로만 알았던 롭이 자신보다 훤히 아는 것에 아미르는 놀라는 눈치다. 어느 식당 뒤편, 숨겨진 비밀 통로로 내려간 그들은 곧 '파이트 클럽'에 도착한다. 롭은 아미르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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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가운데 숨겨진 지하 벙커, 그곳은 잔인한 폭력이 벌어지는 곳이다. 사람의 목숨이 무심하게 거래되고, 타인의 고통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다. 그러나 이 은밀한 클럽은 우리와 유리된 세계는 아니다. 도심 바로 아래 은폐된 장소는 체제의 속성을 상징하는 은유적 공간이다.


그곳은 자본적 시스템의 민낯이며, 평범한 악이 현현하는 장소인 것이다. 누군가의 피와 고통이, 누군가의 살과 뼈가 처참하게 해체되는 공간. 존재를 떠난 육체가 무감한 이들의 손에 손쉽게 거래되며, 이러한 프로세스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보통의 얼굴을 한 악(惡). 이러한 장소성은 우리가 살아내는 시공간의 본질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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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향한 존재의 수난


롭은 벽에다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적는다.

'로빈 필드'

당대 최고의 요리사였으나, 모든 명성과 함께 이름마저 버렸던 그였다. 그런 롭이 오직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십자가에 매단다. 링에서 일방적으로 맞으면 파이트머니가 지급되는 시스템은, 그가 이곳에서 돼지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타자성 안의 주체'는 자신을 내어줌으로 죽으며, 동시에 다시 살아난다.


날것의 폭력 한가운데로, 힘없는 어린 양은 천천히 걸어간다. 자신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무자비한 주먹질을 일방적으로 감내한다. 2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피범벅이 된 채,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클럽의 주인에게 향한다. 다른 파이터가 돈을 받아가는 것과 달리, 고통스러운 얼굴은 오직 '돼지'의 행방을 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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