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될 수 없는 것을 향해(3)

피그(Pig, 2021),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by 김요섭



호모 사케르


'다리우스'로 상징되는 주체성은 너무도 쉽게 타인을 처분하고, 살해하는 전체성이다. 그의 폭압에 결코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 상처 입은 얼굴. 롭은 지배하는 전체성 앞에 선 '낮음'이자, '약함'이다.

추방된 인간으로 어디에도 거주할 곳을 찾을 수 없는 호모 사케르는 정주하는 주체 앞에 벌거벗겨진다. 전쟁하는 동일자 앞에 타자성은 채찍질당하며, 팔다리가 잘린다. 주체가 연장된 세계-내에서 낯선 것은 보기 좋게 편집되어, 전시당하고 팔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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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얼굴


'약함'은 낮은 자의 가능성이자, 유한성이 가닿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초월의 형식이다. 롭은 사랑에 매인 자로서 모욕과 수모를 감내한다. 가장 소중한 이를 납치했던 다리우스에게 오히려 선으로 되갚으려 할 뿐이다.


'그의 낮음'이 타자성을 향하고 있기에, 오직 그것밖에 알지 못하는 '볼모'로 사로잡혔기에. '내맡겨져 있는' 얼굴은 결코 '나약함'일 수 없다. 그가 낮아졌기에 관성적 동일성이 균열되고, 전쟁하는 전체성은 중심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것이다. 무한의 빛은 그가 감당하는 순전함이 지향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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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절대적으로 낯선 것이 다가온다. 그의 '약함'이 향해있는 바깥이, 다시 그를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롭의 벌거벗은 주체성 사이 어딘가, 절대적 타자성은 이미 도착했다. 그의 '매임'이 오직 사랑을 향했기에, 진리는 비로소 장소 없는 장소를 찾는다.


텅 빈 전체성이자 무화된 주체성이 활짝 열린다. 지극히 높음이자 곡진한 아름다움은 그의 약함을 온전히 감싸 안는다. 롭은 매인 자로 어떤 무기도 없는 '연약함'이지만, 동시에 그의 얼굴은 '살해하지 말라'는 무한성의 광휘로 빛난다.


유한자의 울타리 너머

텅 빈 하늘의 가득 참

낯선 바람소리이자 무음

무한히 먼 곳이자 너무도 가까운 빛

순간 모든 존재가 그를 덮쳐온다


'내맡겨져 있음(Gelassenheit)'으로 무화된 주체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본다. '지극히 높은 자'의 도래는 비로소 전존재로, 단 한 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자신이자 타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감히 언어화할 수도 없는, '존재자 없는 존재'의 현현. 너무도 모호한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확실히 이해했다고 그는 느낀다. 절대적으로 다른 것을 향한 존재이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품은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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