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할 결심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1) 박찬욱 감독

by 김요섭



그곳을 향한 기울기


정주할 수 없는 곳,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파도에 쓸려나갈 수밖에 없는 해변. 절대적 타자성이 시작되는 공간. 그곳은 유한자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완성의 순간 사라져 가야 하는. 장소 없는 장소에 누군가 꽂아둔 막대. 모래사장에 꽂혀 있던 나무 조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한 단순한 표식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디에도 정주할 장소를 찾지 못한 사랑의 마지막 손짓이자, 그곳을 향한 어루만짐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비록 상대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끝낼 수 없는 사랑의 기울기이며, 그를 향한 곡진한 마음의 징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표를 찾을 수 없는 유동하는 세계, 부유하는 존재가 해변에 세운 작은 막대기. 그것은 사랑의 증표이자 실재계를 향한 유일한 흔적이다. 유한자를 지워버리는 시간 앞에, 작은 촛불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사랑하는 일 밖에 없지 않을까? 촛불 하나가 타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시작되는 그곳을 향한 기원.



사랑은 그렇게 휩쓸릴 수밖에 없으며, 시간이 흐르면 부서지고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그들의 현재성의 차이는 사랑의 부재를 재촉하며, 세상의 부조리를 온전히 견디는 일도 불가능할 뿐이다. 거친 파도 앞의 모래더미처럼, 사랑은 결국 '없지 않았다'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우연히 그 시간성을 잠시 견뎠다 하더라도, 느닷없이 도착하는 절대적 타자성 앞에 그녀의 의지는 너무도 왜소할 뿐이다.



아모르파티, 다시 사랑할 결심


그것은 주체와 타자의 불일치이며, 존재와 시간, 시간과 타자의 불가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갖 불능 속에도 그녀는 사랑하고 있다. 단 하나의 사랑의 뿌리를 장소 없는 장소에 내려놓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해체하며 영원히 미결로 남고자 할 때, 사랑은 비로소 그곳을 향한다. 고착을 거부하며, 계속 유동하며 뿌리를 내리는 끝 간 데 없는 열정. 그것은 세계-내-존재의 불가능의 가능성이며, 동시에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가(悲歌)이기도 하다.


비로소 영화의 말미, 죽음으로서 그것은 완성됨 없이 완성된다. 불꽃놀이처럼 최고의 순간과 동시에 사라져 가는 사랑은 극단을 허용하는 아름다움과 맞닿는 것이다. 그녀의 헤어질 결심은 전언철회되며, 동시에 사랑을 향한 결심으로 승화되고 만다. 그것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 이미지이자, 끝까지 미결로 남는 사건이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모르파티인 것이다.



역설적이나 그 순간, 미결된 사건으로 영원히 봉인되는 시간성 속에 사랑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랑의 가능성은 오직 정주함 없는 사랑으로 다시 사랑을 환대할 때. 해체를 통한 사랑만이 헤테로토피아적 좌표를 계속해서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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