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존 버거 읽기(2)
이미지는 재창조되었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애초에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점차 사람들은 재현한 사물이 사라진 후에도 이미지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는 한때 무언가를 누군가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이와 함께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는지도 보여준다... 하나의 이미지가 미술작품으로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방식은, 미술과 관련해 교육받은, 문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전제된 몇몇 관념들의 영향을 받는다. 12~13p
자기 동일성으로의 성과 주체
멀리서 온 그분은 이미 도착했다. 도저히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낯선 이는 빈틈을 찾는다. 그러나 굳게 닫힌 주체성이자, 제도화된 관성은 온통 불가능할 뿐이다. 그녀는 살아있으나 죽어있고, 죽어있으나 너무도 살아있다. 좀비처럼 굳어버린 전체성은 현대성의 하부구조 속에서 고착된 일부로만 존재한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단독성을 획득하지 못한 존재, 울타리를 넘어가지 못한 '스갱 아저씨의 염소'일뿐이다. 차이 없이 반복되는 오늘을 어찌할 수 없다며, 성과 주체는 잠 없는 잠에 빠져들고 만다.
사랑, 기억하십니까?
사라져 버린 본래적 실존. 호기심, 잡담, 애매성에 고착된 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온 타자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완고한 주체성으로 침투한 타자성과의 만남, 비로소 열리는 불가능의 가능성. 이미지는 사랑의 기억이다. 그것은 극단을 허용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이며, 가능성의 불가능에도 오직 그곳을 향한 어루만짐이다.
단 한 번의 손길에, 그녀는 전존재가 된다. 그녀의 의식은 무의식과 만나며 존재자는 비존재가 된다. 가능한 것이 더 이상 없고, 불가능할 것도 없는 초월의 순간. 저 무한한 별빛 사이로 날아다니며 동시에 지금 여기에 있는 공감각. 그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만 같다.
불꽃놀이는 예술의 완전한 형태다. 완성의 순간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아도르노
그러나 완전한 합일의 순간, 불꽃처럼 타오르던 감각은 어느새 멀어져 간다. 영원과 같은 환대는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그녀는 무한의 장소에서 유한성의 차가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통증마저 잊어버린 채 그녀는 서둘러 그곳을 향해 손을 뻗는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을 향해, 성간 천체로 계속해서 멀어져 가는 그분의 뒷모습을 향한다.
이미지는 그분을 향한 사랑의 기억이다. 그것은 완전한 합일에 대한 찬미이며 손을 데이는 것도 잊은 채 타다 남은 흔적을 뒤적거린 흉터다. 그것은 언제 도래할지 모를 타자를 향한 기다림이자 망각이다. 형해화된 아름다움의 극단까지 이르는 유한성의 형식인 것이다.
텅 비어버린 그녀에게 남은, 이미지. 그것은 있지만 동시에 없는 것을 지시한다. 텅 빈 장소 속, 부재하는 있음은 그녀 속에 없지 않다. 동시에 무화된 주체는 다시 한번 타자를 품을 수 있다. 기다림, 망각, 계시받은 단독성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