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적 실존을 향한 해체

큐어(Cure, 1997),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야쿠쇼 코지

by 김요섭



호명 테제


살인교사(殺人敎唆)는 본래적 실존을 향한 해체이다. 살해당한 이들의 목에서 가슴까지 이어지는 'X자' 형태의 자상은 그것을 상징하고 있다. '당신의 본모습은 이럴 수 없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너라는 실재는 결코 교사, 경찰, 의사, 심리학자로 환원될 수 없어'라는 과격한 언설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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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된 주체는 무언가에 의해 구성된 것이지, 스스로 구성한 주체일 수 없다는 알튀세르의 언급처럼 본래적 실존은 그렇게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안온하고 적당하게,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에서 결코 진정한 자신은 발견될 수 없다는 것. 이는 상징계 속의 어떤 존재도 진짜를 살 수 없으며, 유한성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서늘한 진실이기도 하다.


살인교사(殺人敎唆)는 그러한 불가능을 넘어서고자 하는 차가운 결단이다. 동시에 강렬한 열정으로 피의 향연은 초월을 향한 제의 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이는 '건너가려는 자'가 되지 않으면 도저히 감각할 수 없는 극단까지 이르는 충동이자, 상징계의 질서에는 전혀 무감한 비의식이다.



모호하고 애매한 주체성, 텅 빈 주체


쿠니오(하기와라 마사토)는 모호하다. 어떤 질문에도 '똑바로,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초등교사, 의사, 경찰 등으로 상징되는 가장 무탈한 존재들에게 되물을 뿐이다.

'어디? 당신의 이야기를 해봐!'

이는 정신분석과 최면술 등을 공부한 그의 의도된 언행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고 멈춰버리기에 그의 태도는 너무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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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 있던 방대한 지적 흔적은 그에게 다른 이의 마음을 조종할만한 기초적 역량을 부여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부정할 수도 없다. 흐느적거림, 끊어짐, 공허한 눈빛 등 그는 이곳의 질서로는 도저히 감각될 수도 이해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는 분명 여기에 있으나, 동시에 이곳에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곳이 아닌 그곳. 의식이 아닌 비의식, 명증성의 요구가 아닌 혼돈의 편재. 그의 존재가 지시하는 그곳은 단일한 실재나 인식으로 환원되는 장소일 수 없다. 실재계 어딘가를 나 홀로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 상징계 속의 질문은 무의미하며 몰가치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동시에 그곳에 있으나 너무도 이곳에 있는 그는, 이곳밖에 없는 존재들에게는 비인간적이며 감당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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