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자유, 당신을 향한 존재

레비나스와의 대화(2022),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읽기(1)

by 김요섭


주체의 탄생


그는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주체의 -어려운- 이 탄생에 대해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오랫동안 자문해 왔다. 탄생? 이것은 정당한 단어인가? 이것은 오히려 갑작스런 밤보다 더 강력한 섬광, 주체의 폭로인 빛 아닌가? 존재자의 드러내기 아닌가? 이것은 익명적이고 비인격적인 il y a 가운데서의, 보편적인 존재 가운데서의 발현이고 주체의 나타남, 개체화된 존재의 노출이다. 탄생의 경이와 신비다.


이 운동, 우리는 이 운동을 의미의 탐색으로 게다가 무-의미에서 벗어나는 시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에서 존재자로 그리고 존재자에서 타인으로 이끄는 길." - (어려운 자유)


책임적 주체성의 표명, 타인의 타자성의 환원 불가능성, 윤리의 우위. "타인에게로 가기"의 이 세 가지 계기들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15~16p)




1.

형이상학이 쉽게 만나는 주체는 '성급한 이웃사랑'이다. 그는 타인을 만나고 있으나, 타자를 발견하지 못한다. 타자를 향함으로 시작된 지향성이 아닌, 자신을 향한 주체이며 나르시시즘인 것이다.


레비나스적 주체는 익명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형이상학적 관성이자, 고착된 장소에서 지시되는 시선 없음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il y a의 중성성, 장소 없음, 비존재로부터 나타난 존재. 이는 타자성 속의 주체이며, 자기 동일성의 의지 없음일 것이다. 오직 그분을 위한 낮음이자 수줍음이며, 약함일 뿐이다.



2.

il y a적 비존재에서 존재자로. 자기 동일성으로 회귀하면서 얻은 울타리이자 주체성은 비로소 전체성을 획득한다. 시작되었기에 피할 수 없는 카오스적 시간성에서, 잠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향한 시간으로부터 도피는, 곧바로 권태로 이행된다. 모나드적 존재의 정주함은 끝 간 데 없이 그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3.

도저히 불가능한 윤리, 그 넘어감만이 '무-의미'에서 벗어나게 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어려운 자유'는 그러한 운동 속에 있는 주체만이 획득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는 구원의 순간 영원처럼 도래하는, '밤보다 더 강력한 섬광'이다. 오직 '건너가려는 자'의 의지이자, 앞을 향해 반복하려 하는 주체에게, 계시처럼 찾아오는 불가능 속의 자유인 것이다.



4.

'어려운 자유'는 더 이상 전체성 속에서 머물 수 없다. '책임적 주체'로서 타자를 향한 유책성을 어깨에 짊어진다. '타인의 타자성'을 쉽게 환원하는 폭력을 행하지 않기 위해, 상징계 속의 폭력을 온전히 감내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만이 '존재자에서 타인으로 이끄는 길'이며, '진정한 윤리'의 우위이자, 불가해한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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