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와의 대화(2022),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읽기(2)
주체성과 il y a
주체는 -또는 주체성은- 저항하면서, 벗어나면서, il y a에서 태어난다.
"빛과 의미는 il y a의 이 끔찍한 중성성 안에서 오직 존재자들의 출현과 지위가 함께 발생한다."
"존재자 없는 존재인 익명으로 존재하기의 혼란스러운 속삭임" 「어려운 자유」
이것은 비인격적이고 익명적인 존재의 두려움이다.
하이데거 역시 본래의 il y a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저술에서 이것은 존재하는(geben : 독일어로 '주다') 모든 것을 풍요롭고 비옥하게 하는 il y a와 관련한다. 반대로 레비나스에게 il y a는 "어떠한 이타성"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은 불확정적 존재의,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고 실존에 저항하는 존재의 귀먹은 그리고 비가시적인 현전으로써 들리는 밤 동안의 침묵, 속삭이는 침묵이다.
"밤은 '모든 것이 사라졌음'의 나타남이다" 「문학의 공간」
모리스 블랑쇼는 이렇게 레비나스와 같은 말로 쓴다. 하지만 이 존재함의 밤, 이 비인격적인 il y a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중성적이다. 이것은 무가 아니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불안에 밤의 공포, '어둠의 침묵과 공포'를 대조한다. 무의 두려움과 존재의 두려움의 대조" 「존재에서 존재자로」
(16~17p)
1.
‘모든 것이 사라졌음’의 나타남은 밤을 매개로 한 재앙의 현현이다. ‘어떠한 이타성’도 없는 카오스적 존재의 비가시적 도래. 그것은 침묵이자 함성이다. 존재자에게 다가오는 비인격적인 죽음이자 아무것도 아닌 중성성으로 변용. 절대적 무의 나타남. 비어있음의 있음.
2.
"존재자 없는 존재, 익명으로 존재하기의 혼란스러운 속삭임"은 역설적 희망이다. 재앙은 중성적이기에, 존재자는 차별 없이 환대받는다. 비존재로 인한 혼란은 존재자에게 유일한 초월의 가능성이다. 지독한 권태, 부조리한 세계, 유한성의 굴레 속에서 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영원히 멀어지는 것과의 관계뿐이다.
3.
서늘한 침묵과 끝 간 데 없는 공포. 비가시적 어둠 속 존재자의 두려움, 이는 죽음이자 전체성 너머의 목소리이다. 벗어나고 저항하며 시작된 주체성에게 먼저 물러난 타자성은 이제 다시 존재자의 시간을 회수하려 한다. 무화된 주체성, 텅 빈 장소와 시간. 그곳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떤 웅성거림, 비가시적 형체, 불확정적인 가능성만이 없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