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인문적 읽기 /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매미의 노래
여름날의 뙤약볕
매미는 노래하네
흙바닥 아래에서
어두운 시간을 마치고서
전쟁에서 돌아온 이가
살아있음을 외치듯
어두운 바닥의 시간, 17년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매미는 일합니다. 어두운 빌딩 속 미로처럼 좁게 구획된 공간에서 데이터를 입력합니다. 아파서 쉰 적도 없이 십칠 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승진도 없습니다. '인사부에서는 인간 직원만 관리한다고, 매미는 인간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료들은 그를 멸시하고 거리낌 없이 모욕을 줍니다.
매미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은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인간만 사용할 수 있는 빌딩 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기에 밖의 공중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지요.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시간만큼 임금이 깎입니다.
그는 일을 마치고도 돌아갈 집이 없어서 회사의 어두운 벽 틈에서 잠을 잡니다. 인간이 마무리하지 않은 일을 홀로 남아 마감하지만 아무도 알아주거나 돕지 않습니다. 오히려 걸리적거린다며 동료들에 의해 짓밟히기도 하지요.
가장 어두운 시간을 매미는 묵묵히 이겨냅니다. '톡 톡 톡'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내뱉으며 그는 견딥니다. 누구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삭막한 빌딩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참아냅니다.
Voice of voiceless
그림책에는 매 장마다 '톡 톡 톡'이라는 의성어를 붙여놓았습니다. 매번 3음절을 내뱉지만 누구도 들어주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삭제된 목소리 '톡 톡 톡'.
매미만 이해할 수 있는 그 언어는 인간사회에서 목소리를 상실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이를 호모 사케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자신을 지킬 수단도 없이 생물학적 존재만 남은 인간. '벌거벗겨진 인간'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며,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매미는 인간들의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존재, '호모 사케르'입니다.
소수와 단독성
완전한 어둠의 시간을 그는 묵묵히 버텨냅니다. '톡 톡 톡'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로 존재를 지켜냅니다. 3번의 '톡 톡 톡'이 매 장마다 계속 반복되는 것과 매미가 허물을 벗기 위한 기다림에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어두운 땅속의 시간을 17년간 참는 것, 매 순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홀로 내뱉은 매미의 언어'톡 톡 톡' 3번은 모두 '소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요.
자연수 중 소수는 모두 1과 자신만으로 나누어집니다. 3과 17은 둘 다 소수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매미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5, 7, 13, 17년 등 소수의 해에 탈피합니다.
오직 자신으로만 나눌 수 있는 존재. 단 하나의 존재로서 '소수'는 자기만의 단독성, 고유성을 상징하지 않을까요? 매미의 존재 역량은 어떤 외부의 폭력에도 자존을 지키는 힘과 인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요?
매미의 노래
어두운 빌딩 좁은 공간에서 17년간 일만 하던 그에게 '매미의 시간'이 도래합니다. 자리를 정리하라는 상사의 지시에 자기 책상을 죽은 이의 몸을 염하듯 닦아 냅니다. 빌딩 속의 삶을 스스로 장례를 치른 매미는 퇴사합니다.
그러나 인간처럼 1층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 사회에 어떤 연고도 없는, 버려진 존재 '호모 사케르'이기 때문이지요. 17년의 노동에도 '파티는커녕, 악수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존재(Voice of voiceless)입니다. 그는 아무런 불평도 원망도 없이 계단을 걸어 올라갑니다.
잿빛 공간 속에서 오직, 그의 초록색 얼굴과 흐려지지 않은 눈은 반짝입니다.
몇 번이고 사라져야 했네
몇 번이고 절망 속에서
나는 나의 장례식장에서
홀로 눈물 흘리었네
슬픔은 잊지 못할 듯하였으나
이내 시간에 흘려보냈고
삶은 언제나 그런 것이라
나의 노래를 이어나갔네
매미가 빌딩 옥상의 가장자리에 올라섭니다. (쓸쓸한 뒷모습에서 혹시 불행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그림책을 다시 보게 됩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 매미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의 머리가 허물처럼 두 조각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자신 외에 누구도 나눌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인 그는 이 순간을 위해 17년을 기다렸습니다. 우울한 회색빛 공간에서 오직 그의 몸에서 나오는 빛만 밝게 타오릅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붉은 매미는 그를 옥죄던 잿빛 수트를 벗어던집니다. 자기 허물을 지렛대 삼아 하늘로 힘차게 날갯짓하여 비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붉은 매미가 날아오릅니다. 억압받고 소외되었던 이들, '목소리 없는 목소리들의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나눌 수 없는 단독성과 고유성을 지킨 존재는 결국 날아오릅니다. 인간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는 비범한 날갯짓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zcKlTjGM51s
Como la cigarra(매미의 노래)
노래 : Mercedes So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