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와의 대화」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읽기(7)
이해가 없는 것과의 관계
명확성 : 욕망은 향유로 실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레비나스에게 향유는-~를 향유하기-il y a밖의 주체가 유리되는 첫 번째 신호, 인간성의 첫 번째 표시인 욕구의 연쇄이기 때문이다.
"욕구는 동일자의 첫 번째 운동이다."
"향유 안에서, 나는 절대적으로 나를 위해 있다. 타인을 참조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나는 고독 없이 홀로이고 악의 없이 이기적이고 홀로이다. 타자들에 반해서가 아니라 '나에 관해서'가 아니라-전적으로 타인을 들으려 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다" 「전체성과 무한」
반대로, 욕망 Desir은 타인을 향한 운동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욕망인가? 왜 (욕망의) D는 대문자인가? 레비나스가 명명하는 욕망은 형이상학적 욕망이고 "비가시적인 것의 욕망"이다. 그리고 첨언하기를 "형이상학적 욕망은... 단순히 욕망을 완성할 수 있는 모든 것 너머를 욕망한다. 욕망은 그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파고드는 것이다." 기대하던 것이 응답하지 않을 때마다 채울 수 없는 커져만 가는 욕망, 절대적인 욕망, 절대적인 것의 욕망, 그 자신의 이탈 속에서 전력을 다하면서 소진하는 욕망. 이 욕망은 무엇을 원하는가?
"절대적인 타자." 이를테면? 매우 정확히 자아가 아닌 것, 내게-머물러 있을-낯선 것, 비가시적인 것, 타자의 무한.
"비가시성은 주어지지 않은 것과의 관계, 이해가 없는 것과의 관계를 함축한다." 「전체성과 무한」
우리-자신의 유폐, 우리의 공유할 수 없는 내면성 사이 그리고 타자들의 세계-사회, 국가-가장자리, 이것은 타자를 향한 탈주이다. 이것은 욕망의 장소이고 형이상학과 윤리 사이의 여백이다. 레비나스의 작업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이 장소(거기)는 전술(前述)한 세계도 아니고, 가상의 세계도 아니다. 이것은 반대로 내가 면-직되는 대면, 타자가 빛나는, 영속적인 타자성 안에서 강제되는 대면의 극도로 구체적인 장소이다. 그리고 "타자가 본래 지닌 위협적인 힘이 타자 앞에서 그리고 양식(良識)에 반해서 살해의 불가능성, 타자에 대한 고려 또는 정의가 되는" 「전체성과 무한」장소이다.
(27~28p)
1.
향유는 자기 동일성을 만끽하는 주체성이다. 시선으로 환원된 낯섦은 언제든지 살해할 수 있음이다. 살아있으나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그의 처분에 맡겨진 신체. '호모 사케르'
주권자는 타인 자를 선별하고 잘라낸다. 이는 욕망의 복수성을 거세하는 폭력이자, 편협한 욕구의 편린이다. 자신 앞에 낮아진 것들로 가득 차길 원하는 이는 차이 없는 반복을 희망한다. 그의 폭압적 지배 아래, 세계는 질서 잡히며, 잠시 안전해진다.
그러나 제거되었다고 믿는 타자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고립된 세계의 주인이며, 바깥 없는 왕국의 주권자이지만, '다스릴 수 있음'은 '다스릴 수 없음'과 함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배하는 전체성이 간과한 것. '이해가 없는 것과의 관계'마저 무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모나드가 단단할수록, 왕국의 통치가 튼튼할수록, 알 수 없는 권태는 안개처럼 짙게 스며든다. 풍요로운 향유 속에 들어온 느닷없는 허기와 외로움.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자 '주어지지 않음'의 현현이다. 그것은 결코 이해됨 없이 침투하는 송곳이며, 절대적 타자성인 것이다.
2.
완전연소는 파고드는 욕망의 극단이다. 응답 없음, 지난한 기다림. 매달리며 거부당하고, 이탈하며 상처 입는 주체. 그녀는 힘의 의지로 약동하는, 단단한 자신감으로 뭉친 전사 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자는 건너가려 한다. 낯선 것, 비가시성, 미래를 향한 항해 속, 생성하는 과정체로 존재하려는 것이다. 거부당하며, 응답하지 않는 타자를 향해, 끊임없이 좌절하는 주체. 침투하려는 존재는 채우지 않기에 구멍 뚫리고, 습격당한다.
타자성으로 침식당한 주체는 텅 빈 존재가 된다. 동시에 텅 빌 수 없음에서 도래하는 날 선 고통은 여전하다. 이해받지 못하며, 이해됨 없음과의 관계는 절대적 낯섦 앞에선 주체의 난감함이다. 한 번도 주어진 적 없는 관계이자, 강제되는 대면의 위험성. 온전히 노출된 주체. 살갗이 타들어가는 통증에도 그녀는 오직 그곳을 향해, 도주로를 만들 뿐이다.
'우리-자신의 유폐, 공유할 수 없는 내면성 사이'. 주체를 유폐함으로 인해 비로소 시작되는 바깥. 공유될 수 없는 것 사이의 '열림'이자 불가능의 가능성. 그것은 오직 그곳밖에 모름이며, 자신의 죽음마저 불사하는 찌르기이자, 완전연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