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타자의 이념을 넘어서는, 타자가 나타나는 방식, 우리는 이것을 얼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얼굴에서의 관계는 곧장 윤리적이다." 요컨대 "얼굴은 무한을 의미한다." 「윤리와 무한」
"무한을 생각하면서, 곧장 자아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한다." 「후설,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신이 나를 창조하면서, 신의 작품에 새겨진 제작자의 흔적으로써 존재하기 위한 이 이념을 내 안에 놓았던 기이함을 발견해서는 안 된다." 르네 데카르트 「세 번째 형이상학적 성찰」
"무한은 욕망으로서 발생한다. 욕망할 수 있는 것의 소유를 달래는 욕망으로써가 아닌, 만족시키는 대신에 욕망할 수 있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무한의 욕망으로써. 완벽히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욕망-선함." 「전체성과 무한」
"욕망의 운동은 욕망의 포기 같은 것일 수 있다." 자크 데리다 「글쓰기와 차이」
"우리는 무한과의 관계를 포괄할 수 있을 종합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말할 수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또한 다른 삶의 사랑에 대한 의무 안에서 절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의식이다."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대담」
(29~30p)
1.
금기와 위반을 넘나드는 것은 욕망이다. 타자를 향한 완전히 낯선 운동은 '욕망의 포기'(데리다)를 부른다. 이는 몰락하려는 자의 최초의 발걸음이자, 망각이다. 무한을 환대하기 위한 운동이자 욕망은, 단 한 번도 포기된 적 없는 것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2.
레비나스의 욕망은 유책성 안의 욕망이다. 그러나 이것을 틀 안에 갇힘이나 욕망의 한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책임은 바깥을 향한 윤리이며, 무한자는 타자의 얼굴을 통해 현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욕망이자 초월은 타자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너가려는 주체, 오직 타자성 속의 주체만이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데리다가 말한 '포기'는 유책성 속의 행위이며, 이로써 무한을 향한 여정은 계속될 수 있다.
3.
불가능의 나타남. 타자의 얼굴은 결코 살해할 수 없다. '기이함을 발견해서는 안 된다'로 시작된 낯선 운동은 새로운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앎으로 환원할 수 없는 비밀. 그것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욕망-선함'이다. 이는 유한자가 그것에만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제작자의 흔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