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함을 발견해서는 안돼

「레비나스와의 대화」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읽기(8)

by 김요섭



"내 안에서 타자의 이념을 넘어서는, 타자가 나타나는 방식, 우리는 이것을 얼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얼굴에서의 관계는 곧장 윤리적이다." 요컨대 "얼굴은 무한을 의미한다." 「윤리와 무한」


"무한을 생각하면서, 곧장 자아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한다." 「후설,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신이 나를 창조하면서, 신의 작품에 새겨진 제작자의 흔적으로써 존재하기 위한 이 이념을 내 안에 놓았던 기이함을 발견해서는 안 된다." 르네 데카르트 「세 번째 형이상학적 성찰」


"무한은 욕망으로서 발생한다. 욕망할 수 있는 것의 소유를 달래는 욕망으로써가 아닌, 만족시키는 대신에 욕망할 수 있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무한의 욕망으로써. 완벽히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욕망-선함." 「전체성과 무한」


"욕망의 운동은 욕망의 포기 같은 것일 수 있다." 자크 데리다 「글쓰기와 차이」


"우리는 무한과의 관계를 포괄할 수 있을 종합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말할 수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또한 다른 삶의 사랑에 대한 의무 안에서 절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의식이다."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대담」

(29~30p)




1.

금기와 위반을 넘나드는 것은 욕망이다. 타자를 향한 완전히 낯선 운동은 '욕망의 포기'(데리다)를 부른다. 이는 몰락하려는 자의 최초의 발걸음이자, 망각이다. 무한을 환대하기 위한 운동이자 욕망은, 단 한 번도 포기된 적 없는 것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2.

레비나스의 욕망은 유책성 안의 욕망이다. 그러나 이것을 틀 안에 갇힘이나 욕망의 한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책임은 바깥을 향한 윤리이며, 무한자는 타자의 얼굴을 통해 현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욕망이자 초월은 타자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너가려는 주체, 오직 타자성 속의 주체만이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데리다가 말한 '포기'는 유책성 속의 행위이며, 이로써 무한을 향한 여정은 계속될 수 있다.


3.

불가능의 나타남. 타자의 얼굴은 결코 살해할 수 없다. '기이함을 발견해서는 안 된다'로 시작된 낯선 운동은 새로운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앎으로 환원할 수 없는 비밀. 그것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욕망-선함'이다. 이는 유한자가 그것에만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제작자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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