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와의 대화」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읽기(9)
얼굴
만약 타인의 얼굴과-최초-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사물들에 대한 나의 존재와 나의 앎-권력의 확실성 속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얼굴은 이러한 질서를 파괴한다. 자아로부터 그리고 모든 설명으로부터 파악되지 않는 타인의 얼굴의 환원 불가능한, 압도적인 현전과 마주하게 된다. 얼굴의 역설 : 얼굴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부재로서, 바깥으로서 있다. 그러면서도 내부에 의해 흡수된, 안과 밖 사이의 빈약한 경계로 있다. 얼굴은 벌거벗었으나 비밀스럽다.
얼굴은 얼굴, 순수한 신호, 서명일뿐이다.
"얼굴은 그 자체로 있고, 어떤 체계에도 준거하지 않는다. 「전체성과 무한」
얼굴은 나의 기억과 사유 안에서 타인을 동일시하는 것이고 타인의 늙어감, 필멸성, 인간성 안에서 그를 뒤따르는 동일성이다. 절대적으로 유일한 얼굴은 타자이다. 레비나스가 얼굴이라고 부르는 것은 미학으로, 얼굴의 이미지로 귀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얼굴은 당신의 사유가 파악할 내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얼굴은 포섭될 수 없는 것이다. 얼굴은 당신을 저편으로 이끈다. 이것은 얼굴의 의미 작용이 얼굴을 앎의 상관 항으로서의 존재로부터 빠져나가게 한다는 점이다. 「윤리와 무한」
조형적 이미지와 감각의 지각이 되기 전에, 더 본질적 측면에서 얼굴은 의미 작용, 말 parole이다. 그래서 얼굴의 들음은 얼굴의 보임에 앞선다.
최고의 요구, 따라서 타인의 얼굴은 자아의 탁월한 자발성, 이 잘 나가는 행복한 능력을 문제 삼는다. 「어려운 자유」
타인을 위한 책임은 주체에게 일어나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주체 안의 존재성에 선행한다. 타인을 위한 책임은 타인을 위해 저당 잡혔을 자유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항상 문제가 되었다. 박해를 받았다.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
(31~33p)
1.
쓰러질 듯 빈약함.
내 앞에 선 가난한 얼굴, 호모 사케르.
모든 수식(修飾)은 내가 명명한 언어다. 명증성 뒤로, 얼굴은 멀어지기 시작한다. 가난, 비천함, 약함.... '앎-권력'이 포획할 수 없음은 계속 물러날 뿐이다.
부재하는 언어, 바깥의 존재, 더 이상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음으로 인해, 이해되지 않음의 불확실성과 함께 나는 이끌린다. 죽음을 닮은 이는, 그것보다 앞선 시간에 나를 나로부터 꺼낸다. 늙어감 속의 단절, 절단된 꽃.
2.
비존재로부터 시작된 자유는 내 손을 잡는다. 잘려진 존재는 타자의 얼굴을 닮았다. 어떤 울타리도 공유하지 않는, 바깥. 얼굴 없는 목소리. '벌거벗었으나 비밀스러운' 나타남. 죽음, 계통도 체계도 없으나 가장 확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