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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이 줄 수 없는, 높음

「촛불의 미학」가스통 바슐라르 읽기(2)

by 김요섭



그리하여 불꽃의 관조는 하나의 근원적인 몽상을 영속화시킨다. 그것은 우리를 세계로부터 떼어놓으며 몽상가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불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현전이지만, 그것의 옆에 있으면 우리는 멀리, 너무도 멀리 꿈꾸게 된다. "우리는 몽상 속에서 길을 잃는다." 불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거기 있다. 그래서 몽상가는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고 크게, 너무도 크게 꿈꾸면서 - 세계에 대해 꿈꾸면서 - 다른 곳으로 꿈꾸러 간다.


그래서 불꽃의 몽상가가 불꽃에게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는 그렇게 시인이 되는 것이다. 세계와 세계의 운명을 확대하고 불꽃의 운명에 대해 명상하면서, 몽상가는 언어를 확대한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불꽃의 명상은 몽상가의 정신현상에 수직성의 양식, 수직화하는 자양을 주었던 것이다. 이 대기적 양식은 모든 '지상의 양식'과 대비되는 것이다... 즉 빛을 확실하게 주기 위해 높이, 끊임없이 더 높이 타오르라는 것이다.

(12~13p)




1.

'불꽃의 관조'는 몽상가의 의지이다. 유한성에서 근원적 몽상의 아름다움을 지속하는 가능성은 단독성과 만난다. 영속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생의 약동은 오직 '위대한 현전'을 마주하며, 그로 인해 다시 힘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함은 부재하는 것의 현현을 기원할 뿐이다. 이는 몽상 속의 열림이며, 전적으로 다른 헤테로토피아를 향함이다.


그러나, 불꽃은 너무도 연약하다. 작은 빛은 금방이라도 스러질듯한 약함일 뿐이다. 그곳에 어떤 힘이, 전적으로 새로움이 있단 말인가? 즉발적인 의심은 빛 너머로 향할 수 없다. 꿈꿀 수 없는 몽상가는 표면에 머물며 꿈을 이루었다고 말할 뿐이다.



2.

그의 눈은 오랜 시간, 붉게 물들었다. 짧은 순간 열린 틈으로 서슴없이 들어선다. 두려움 없이 붉은 새싹의 투쟁 속으로 향하며, 불꽃의 위험을 몸안에 들인다. 불은 순식간에 그의 전체성을 활활 태운다. 지속은 그를 가장 연약한 빛에도 타버리며, 건너가려는 자로 변용시켰다. 검게 그을린 재를 밟고 선, 작은 틈 너머의 세계. 그곳은 결코 작을 수 없다. 측량할 수 없는 광활함은 높음이자 낮음이며, 끝을 상상할 수 없는 너무도 멀리 있는 꿈의 어딘가.



3.

몽상가는 붉은 새싹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존재의 가능성을 입는다. 언어화할 수 없는 신비를 언어로 쓰며, 그는 시인이 된다. 그의 지평은 가장 낮음을 통해 지극히 높음을 향한다. '수직성의 양식'은 불꽃이 준 선물이며, 이 '대기적 양식'은 그 어떤 '지상의 양식'이 결코 줄 수 없는 확실성이며, 동시에 모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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