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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너머의 가능성

「레비나스와의 대화」 프랑수아 푸아리에 / 레비나스 읽기(14)

by 김요섭



나는 네 것이다


타자는 유혹도 문제도 아니다. 그는 앎의 대상도 기쁨의 대상도 아니다. '타자로서 타자의 가까움'은 타자를 위한 활동, 타자의 일상의 물질적인 삶을 위한 근심인 수동성에서 자기-자신의 물러섬 속 내가 욕망하지 않았던, 내가 겪는 타자를-위한-책임으로 내게 부과된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나는 네 것이다." 이는 내가 타자를 위해 존재하기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뱉을 수 없는 문장, 즉 내가 "널 사랑해"라는 고백으로 너에게 말하고 싶을 문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들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드러낸 맹세의 형태로 타인을-위한-책임을 표현하는 것은 이 단어들, "존재, 타자를-위한-책임"의 구체적인 힘을 중성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을-위한-책임은-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무한한 요청-심심풀이가 아니라 강압이다.


1. 책임 : 근본적 비대칭


우리가 타자들로부터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하다고 원하는 것은 부당하다. 「팡세」


법 앞에서, 책임은 보통 나-자신에게 요구된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법, 이러한 인간들의 정의 그 어떠한 것도 내게 타인을-위한 책임, 타인이 가하는 고통과 타인이 감내하는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책임은 다른 것과 관련 있다.

(44~45p)




1.

'나는 네 것이야!'라는 말은 발화자로부터 시작되는 언설이다. 그의 결심은 그녀의 사랑을 받기 원함과 함께 시작된다. 자신의 전부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은, 너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의지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열은 사랑받지 못함에도 네 것일 수 있는 가능성을 모른다. 텅 빈 사랑이 무엇인지, 소유함 없이 간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유한자의 거친 욕망은, 그것이 곧 사그라들고 말 것임을 보지 못하며, 죽음까지 맞닿는 차가운 열정을 오해할 뿐이다.



2.

내가 없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랑은 본래적 실존으로 존재할 수 없다. 뜨겁기만 한 열정은 아무것도 줄 수 없음의 온도를 모르기에. 등가교환의 욕망이 묻어있는 동일자의 의지는 인내하지 못한다. 그의 의무는 '나-자신'을 넘어서지 않으며, 법적인 책임 이상을 지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사랑받지 못할지라도, 내게 부과된 것을 받아들이는 '수수께끼'와 관련 있을 뿐이다.



3.

법 앞의 책임 너머에 있는 가능성은 유책성이다. 그것은 보통의 책임과 다르며, 절대적으로 낯선 계시이다. '나는 원한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는 자신보다 앞선 존재를 떠올린다. 그곳을 향한 떨림이자 열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게 한다. 다른 어떤 이보다 죄가 더 크다는 고백을 자신의 이마에 붙인 채. '나는 네 것'이라는 달콤한 수사가 없음에도 계속하는. 그것밖에 모르는 존재이자 비존재의 불가능한 동시성. 이는 도저히 계속할 수 없지만 계속하는, 끝 간 데 없는 사랑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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