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4)
그는 나에게 영원과, 증명할 필요 없는 한 존재의 감정을 주었다. 나는 그의 존재 덕분에 다시 신을 가정하게 되었다. 우리가 대면한 그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더 나아가 놀라운 것은, 바로 내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나는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어째서일까? 내가 있는 공간에서, 내가 끌려들어 간 공간에서, 모든 것이 또 다른 시작처럼 회복되는 점을 또다시 지나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싸우는 것을 확실히 멈추는 것으로 족하리라.
그가 강한 건, 그가 굳건해서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의 기준을 빗나갈 정도로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의 연약함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그의 연약함은 정확하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극심한 공포를 고취시켰다. 절대권력을 지닌 누군가가 발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포를 말이다. 그를 모욕하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 모욕을 주고자 하는 생각은 되려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돌을 던지는 행위이자, 또한, 나에게 다다르지 않을 돌이었다.
나는 누구를 상처 입혔는지도, 그 상처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사람마다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며 하나가 다른 하나 속에서 치유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 상처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남을 외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외상의 연약함은 특히나 무한한 것이었다. 내가 다가갈 용기를 가지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16~17p)
1.
그와 대면한 순간, 이미 자신을 잃어버렸음에도 무엇을 갈구하는 것일까? 그의 약함을 견딜 수 없는 것은, 씁쓸한 결핍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또다시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할 현존재의 실존. 진실은 '절대권력'보다 더욱 불안하고,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렇다고 영원히 멀어져 가는 그를 욕할 것인가? '무책임한 결백'이자 '무결점의 광기'를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성간 천체보다 빠른, 완성의 순간조차 잊게 만들 순수성을 탓해야 할까? 내 '눈 안에 입은 화상'을 고쳐달라고 소리칠 것인가? '결코 돌아올 수 없는'것은 그것인 채로 받아들일 수밖에. 가장 멀리서 도래한 빛은 비밀스럽게 비추며 사라져 갈 뿐이다.
2.
그의 죽음은 새로운 좌표를 생성한다. 75.32년의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은 '최초의 움직임'처럼 그곳을 통과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무한히 멀리서 도래한 성간 천체도 알 수 없는 시간을 기다리며, 망각할 것이기에. '모든 것이 또 다른 시작처럼 회복되는 점'에서 '외상'은 치유됨 없이 치유된다. 오직 그를 믿는 가운데, '내가 싸우는 것을 확실히 멈출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투쟁을 멈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서늘한 열정이자, 다시 사랑할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