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고독 너머, 타자의 얼굴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8)

by 김요섭



내가 그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 바로 이 존재, 목적을 위하여 그 스스로를 배제할 뿐 아니라 호의가 없는 목적에서 물러나고, 닫힌 상태를 유지하고, 길가의 경계처럼 부동의 상태로 있는 이 존재를 위한 증인. 나는 경계석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 위한 힘들고 고통스러운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천천히ㅡ갑작스럽게ㅡ이 이야기에는 증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기 존재했다.ㅡ"나"라는 것은 이미 누구일 뿐이지 않는가? 누군가의 무한?ㅡ그와 그의 운명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위해, 그의 얼굴은 헐벗고 그의 시선은 분할되지 않은 채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위해서. 나는 거기 있었다. 그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그 자신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거울에 비친 것은 그가 보는 나이자, 그가 아닌 다른 사람ㅡ타자, 낯선 자, 가까이 있지만 사라지고, 다른 가장자리의 그림자, 아무도 아닌ㅡ이기 위해 거기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마지막까지 머물러 있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분열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끝을 맺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유혹이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고 말을 건넨다. 그들은 스스로를 가지고 자기 자신으로 가득한 고독을 만들어 내는데 그 고독은 가장 공허하고 가장 거짓된 고독이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나라는 존재는 자아도 없이, 자아로 존재했던 적도 없이, 그리하여 최후의 존재가 되고 마는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이다. 그 사실은 나로 그토록 큰 짐과 그토록 헐벗은 감정, 측정할 수 없는 불안으로 두렵게 할 것이다. 나는 무사 태평함, 시간의 운동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채기를 거부함을 통해 나 자신과 그에게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24~25p)




1.

'무사 태평함, 헐벗은 감정'은 존재의 허기가 만들어낸 공허다. 그것은 '비어있음'이 아닌, 꽉 채운 자기성의 거품이다. 먹거리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생존 기계로 전락한, 낮은 인간. 자신의 비루함을 알아채기는커녕, 그것마저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말인성.


그러나, 그들의 정신마저 단단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측정할 수 없는 불안'은 결코 감당하지 못하며, 분열될 뿐이다. 어떤 결단도 없는 왜소함은 그저 쓸려내려 갔다가, 다시 밀려든다. 어쩌면 그것이 '거짓된 고독'의 진실한 몸짓이 아닐까.



2.

타자의 얼굴은 거기 있음에 현현한다. 그 자신보다 나를 향한 존재로, 주변의 '경계석'이 되고자 한다. 이는 단지 '나를 보기 위함'이 아니며, 자신을 잃어버리기 위함도 아니다. 느닷없는 존재 사건은, 마지막까지 머무르는 증인이다. 오직 자신으로 환원되지 않기를 간청하는 헐벗음. 가장 낮은 얼굴로, 언제든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가벼움을 감수하며.



3.

'기이한 동요'이자, 이상한 그림자는 지치지도 않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한다. 단단한 줄만 알았던 뼈는 그의 손길에 으스러진다. 심각한 내출혈, 역류하는 피는 분출하듯 쏟아져내린다.


나는 깨져버린 거울을 바라본다. 향유하는 전체성은 더 이상 꽉 찬 풍선을 만들지 못한다. '포기된 나, 열린 나'는 피묻은 얼굴이며, 새로운 가능성이다. 비로소 그는 '분열 속에, 분할되지 않은 채'로 머문다. 새로운 고독은 자신의 외로움을 반복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전혀 다름을 향한 '경계석'. 그녀는 비로소 '자식성'을 품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머무른 타자는, 최후의 인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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