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명명하는, 잔인한 망각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7)

by 김요섭



아마도 그는 우리 사이에 존재했었을 것이다. 우선, 우리 모두 사이에. 그는 우리를 갈라놓지 않았다. 그는 어떤 공백을 점유하고 있었다. 채우기를 바라지 않는. 그 공백은 바로 인정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었다 생각이 막혔을 때는, 빠뜨린 생각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의 생각이 우리를 자주 호명할지라도, 우리는 그에게 그와 같은 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는 엄청난 결백과 무책임한 태도로 침묵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어디에서나 침묵했다.


그의 침묵은 구조를 요청하는 것도, 거북스러움을 자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시간을 죽이는 행위였다. 그는 우리 사이에 있었지만 은밀하게 편애했고, 우리가 예견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움직임은 그가 거기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단번에 그를 멀리 던져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움직임은 우리를 우리 스스로에게 무심해지도록 만들었으며,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들조차 우리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사막에서 우리를 바꾸어 놓는 폭풍우였다. 고요한 폭풍우. 하지만 그 폭풍우가 지나고 나서 우리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그의 곁에서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부재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22p)




1.

그의 죽어감은 '구조를 요청'하지 않는다. '예견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멀어져 간다. 어쩌면 그는 부정당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정원 초과의 상태로' 함께 있었던, '그저 초과된 한 명'조차 죽이고자 할 뿐이다. '조용히 시간을 죽이는 행위'는 영원히 멀어지는 형식이며, '그가 거기에 있었던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2.

'채우기를 바라지 않는 공백'은 침묵의 폭풍우이다. 결단 없는 막힘이자 새로운 호명의 단속성. 스타카토로 명명되는 너와 나의 낯선 이름. 웅얼거리는 단음(單音)은 무책임한 결백이며, 망각이다. 영원히 멀어지는 그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끊어지며 이어지는 목소리의 현상, 씁쓸한 죽음.


그가 떠나 버린 황량한 사막, 내가 아닌 이들마저 우리를 떠나는 차가운 폭력. 그럼에도 '그와 같은 폭력'을 되갚아 줄 수는 없다. 화상을 입은 눈은 축제 이후의 서늘함을 감내해야만 한다. 지독한 기다림을 사랑이라 명명하는 잔인함. 부재하는 그곳을 향한 망각. 텅빈 주체의 고요한 애도일기는 지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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