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19)
회복 중인 것처럼 보였지만 명백하게 회복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에겐 희미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보였으며, 그의 귓속으로 침전하는 만들이 소음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그는 무엇이었는가? 그에 대해서는 그녀가 붙여 준 별명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 별명은 매우 낯설었고, 그의 말은 지식인의 현학적인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 별명은 그에게 적합해 보였다.
그는 마치 지식을 가진 자를 지식인이라 하듯이 진부해졌다. 시간 때문에? 행복이란 시련 때문에? 미지의 고통 때문에? 처음에 나는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의심했다. 우리가 그에게 우연히 흘린 희귀한 이미지를 줍기만 할 뿐이었는데, 조심스럽지만 결연한 움직임을 통해 우리 속에서 그 이미지들을 들어 올려 우리 자신에 관한 변하지 않은 진실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와 그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성립되지 못했다.
최소한 그와 나 사이에서조차도. 그가 특별히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은전의 회백색만큼이나 맑고 창백한 그의 눈은 우리 속에 속한, 우리만을 구별하는 듯했다. 우리 자신과 가장 먼 것은 뒤늦게서야 내게 또렷한 이미지로 다가왔는데, 내가 예상한 바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중 단 한 사람만 보고 있었다고 여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단 한 사람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가운데 단 하나의 존재에게 약간의 우정과, 직접적으로는 구조의 요청, 고백 외에 다름 아닌, 지체 없이 모든 것에 종말을 고할 고백을 기대했다.
(42~43p)
1.
가장 먼 것은 다가온다.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오직 그곳을 향해 다가오는 '희귀한 이미지'. 멀리서 온 성간 천체가 도착할 단 하나의 장소는 창백한 신호를 보낸다. 불가능한 명증성과 진부한 환원을 넘어선 '복수'의 목소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능성 속에서만, 송수신되는 '구조의 요청'. 오직 계시받은 단독성의 의무이자 특권은 '약간의 우정'으로도 느닷없이 몰락한다. '종말을 고할 고백'이며, 단 하나의 존재 사건.
2.
'희귀한 이미지'는 우리 가운데 이해되지 못한 채로 받들어진다. 그의 절대적 다름은, 오직 신비인 채로 우리 자신이 되며. '어떤 관계도 성립되지' 않은 채, 완전한 사랑에 다가선다.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변하지 않는 진실'. 우리 사이, 절대적 무에서 시작된 사랑은 더 이상 들어설 장소 없음의 순간까지 이른다. '결연한 움직임'은 극단적인 에로스의 시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