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서의 생을 선물하는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26)

by 김요섭



그 순간에는 그가 순환의 환상에 유혹당한 것 같았는데, 자기 자신 앞에서 다시 한번, 죽기를 바라며 진정한 미래를 향하듯이 우리를 향해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온 힘을 다해 이러한 운동에 저항해야 하는가? 어째서 그것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위협임을 증명해야 하는가? 나라는 고유한 존재의 삶이 가진 무거움 때문인가, 좀 더 커다란 위험에 대한 근심 때문인가? 동요하는 모든 정체 상태,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내 모든 관계, 급작스럽고 폭력적이며 냉정한 그 무엇. 그것은 끝나지 않아도 끝을 맺게 되기에 나는ㅡ폐쇄되고, 보호받는ㅡ구(毬)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표면을,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표면을 만든다.


그것은 놀라움과 공포, 환희로 나를 사로잡는 환영이다. 그가 내게 속한 사람이 아닌 것보다 훨씬 더 나는 그에게 무관한 존재일까? 내가 그의 주변에 만들어 놓았을 경계로 나는 그를 포섭하게 될까? 그래서 그 경계는 그를 감싸고 짓누르고, 내가 버틴다 해도 결국엔 그를 감금하겠지? 결과는 현기증을 동반할 정도다. 결과는 과잉이다. 한번 완료된 회귀는 균형을 다시 세우고 오직 나에게 위험한 인상만을 남겨서, 중심으로 데려가지 않고 느끼고 보는 나의 가능성은 순환 속에서 빠르거나 꼼짝 않는, 놀라울 정도로 보존된 빛의 단면으로 다시 나뉜다. 공간이 혁명과 같은 것을 실현하지 않는 한, 공간을 중심으로 도는 회귀는 계속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경계로 존재하는 느낌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매우 부분적인 경계, 어렴풋하게나마 모든 곳으로부터 그 공간을 경계 지을 최소한의 부분으로 말이다.


이 순간, 우리의 인접성, 우리 안에서의 생, 삶의 메마르지 않는 힘을 그가 느끼도록 하는 것이 불타오르는 의무처럼 여겨졌다. 또한 그가 여기서 익숙하고, 친숙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로 있을 권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된다. 하지만 종종 그의 내면에서 우리는 오래전에 죽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받아들이기 쉬운 확실한 형태 하에서가 아니라, 우리 얼굴에 쓰인 불분명함과 원한의 그늘 하에서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역시, 우리에게 기대고 있었던 것을 우리 속으로 사라지게 방치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모든 인간, 그리고 최후의 하나마저도. 그것은 생각하기를 허락하지 않는 사유나 마찬가지다.

(51~52p)




1.

엄습하는 날개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단 한 점에 새겨진 날카로운 구멍. 기이한 '증폭'은 가까워지며 멀어진다. 오래전에 이미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한없이 나약해진 몸은 칼을 들기조차 벅차다. '생각하기를 허락하지 않는 사유'는 모든 것을 중지시킨다. 경련이 일어난 오른팔을 흐릿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검푸른 것이 서늘하게 식어간다. '불분명함과 원한의 그늘', 어떠한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는. 머리 위로 까마귀 떼가 검은 원을 그리며 날아든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2.

심연 깊은 곳,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불분명한 웅성거림은 '우리 속으로 방치했던' 무엇이다. 내면에 무심코 귀 기울이는 순간, 멈춘 줄만 알았던 심장의 목소리를 다시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건너뛴 박동은 여전히 약동하고 있다. '나를 감금'하고 '짓누르는' 텅 빈 중심의 경계이자 '빛의 단면'.


그래, 원한이라도 좋다. 칼을 쥔 손에 힘을 준다. 다시 한번 시작되는 나와 그의 변용. '계속해서 그의 경계로 존재하는', 이상한 '현기증'. 어찌할 수 없는 모호함마저도 내가 원했을 뿐이다. 천천히 일어서서, 다가오는 적을 향해 칼을 겨눈다. 그 앞에서 다시 한번 '우리 안에서의 생'을 선물하리라.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은 '불타오르는 의무'이자 특권.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다가 고꾸라지는 일은, 존재를 해방시키는 자를 환대하는 불꽃이다. 지극히 높은 자를 향한 '놀라운 과잉'이자, 최고의 선물.


3.

'동요하는 정체 상태'는 절대적 타자에게 맞선 순간이다.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표면'은 그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내맡겨진다. 완성은 너무도 짧았을 뿐이다. '급작스럽고 폭력적이며 냉정한 그 무엇'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덮친다. '끝나지 않아도 끝을 맺게'되는 고요한 침묵, 서늘한 망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장 약함에 도착한 빛